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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테면 와 봐, 우린 빨치산이 될 테니”… 결전 앞둔 우크라 오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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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테면 와 봐, 우린 빨치산이 될 테니”… 결전 앞둔 우크라 오데사

입력
2022.03.08 18:44
수정
2022.03.08 19:5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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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 침공 임박… 시민들 장벽 세우고 전투 대비
러시아계 도시들 폭격 광경에 오데사 시민들도 충격
친러파 시장도 푸틴 맹비난 "오데사 공격은 전쟁범죄"

7일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공격에 대비해 해변을 따라 모래주머니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다. AFP 연합뉴스

7일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공격에 대비해 해변을 따라 모래주머니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다. 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서남부 항구도시 오데사 시민들은 이웃 도시 미콜라이우 전선(戰線)을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때때로 불안이 엄습하지만, 항전 의지로 억누른다. 러시아군이 크림반도 북쪽 헤르손을 장악한 뒤 흑해 연안을 따라 서쪽으로 진군 중이기 때문이다. 헤르손에 이어 미콜라이우마저 뚫리면 다음 차례는 오데사다. 이미 흑해에는 러시아 군함들이 포진해 있다.

오데사는 100만 명이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제3도시다. 우크라이나 해상 무역 70%를 담당하는 국제적인 물동항이며 군사요충지이기도 하다. 침공 초기부터 러시아는 오데사를 노렸다. 이곳을 거머쥐면 동남부 마리우폴부터 크림반도를 거쳐 서남부 오데사까지 이어지는 회랑을 완성하면서 우크라이나 앞바다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 장기전을 대비해야 하는 우크라이나에는 해상 교통과 물자 보급로가 끊기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가 오데사를 손에 넣기 위해 무자비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수일째 러시아군의 맹폭을 견뎌내고 있는 미콜라이우처럼 오데사도 쉽게 굴복하진 않을 것 같다. 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오데사 시민들은 이미 전투 준비를 끝냈다. 청년들은 해변에서 모래주머니를 날랐고, 기술자들은 철로를 자르고 붙여 대전차 장애물을 만들었다. 주요 진입로와 중앙대로, 오페라하우스, 시청사 등은 바리케이드로 꽁꽁 둘러싸여 있다. 시민군은 총기 사용법도 훈련받았다. 대형 식품 매장은 군수품 창고이자 보급 기지다. 의약품과 침낭, 보온복 등 필수 물품을 항목별로 분류해 뒀다. 도시 곳곳 식당에선 매일 8,000인분 식사를 만들어 우크라이나군과 지역 방어부대에 전달하고 있다. 도시 전체가 ‘요새’나 다름없다.

시민들의 항전 의지야말로 ‘난공불락’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식인부터 예술가, 노동자, 갱스터까지 모두가 똘똘 뭉쳐 있다”고 전했다. 사실 오데사는 친(親)러시아 정서가 강한 도시였던 터라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와 배신감은 더 크다. 일례로 지난해 9월 조사에서 주민 68%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같은 민족”이라고 답한 반면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통합돼야 한다”는 응답은 20%에 그쳤다. 오데사는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린 민중 봉기의 효시로 평가받는 1905년 ‘포템킨 전함 반란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가디언은 “오데사 시민들은 러시아와 역사적ㆍ문화적으로 친밀한 이 도시가 공격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불과 며칠 사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상상도 못할 많은 일을 했다”고 촌평했다.

7일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지역 방어부대에 자원한 시민들이 러시아군 공격에 대비해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7일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지역 방어부대에 자원한 시민들이 러시아군 공격에 대비해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민심은 완전히 뒤집혔다. 2014년 축출된 친러파 빅토르 아뉴코비치 전 대통령 소속 정당 출신으로 러시아 여권 소지자라는 의혹까지 받았던 겐나디 트루하노우 시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기색인 노란색 완장을 착용하고 맨 앞에서 항전을 지휘하고 있다. 트루하노우 시장은 6일 기자회견에서 “어떤 종류의 개자식, 멍청이, 쓰레기 같은 놈이어야 오데사를 향해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것이냐”며 “포탄을 날린다면 전쟁범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러시아군은 파시스트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푸틴은 초자연적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맹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종종 오데사를 언급한다. 2014년 5월 우크라이나 친정부 시위대와 친러시아 무장세력 간 충돌로 러시아계 48명이 숨진 참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계가 다수인 제2도시 하르키우와 마리우폴이 무차별 폭격당하는 광경을 보며 강경 친러파 시민들까지 등을 돌렸다. 유럽 여자 체스 챔피언이자 현재 오데사 시의원인 나탈리아 주코바는 결사항전을 다짐하며 가디언에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군이 오데사를 점령할 수도 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도시를 운영할 자원이 과연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빨치산이 될 테니까(We will become partisans).”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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