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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에 극단선택 고교생… 상처는 선명한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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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에 극단선택 고교생… 상처는 선명한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입력
2022.03.15 04:30
수정
2022.03.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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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트라우마에 고교 입학 3개월 만에 극단선택
법원 "가해자 소년보호 처분, 피해 감정 일정 해소"
"지속성·예측가능성·인과관계 입증해야 인정받아"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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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이 남긴 상처는 선명했지만, 누가 책임져야 할지에 대해선 선명하게 나온 게 없었다. 2015년 지원(가명)이 어머니 이모씨는 학폭 트라우마로 딸을 잃었다며 6년간 법정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법원은 "사망과 괴롭힘 간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며 이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부장 윤도근)는 지난달 17일 이씨가 딸의 중·고등학교 동창 학부모들과 학교법인, 서울시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사실상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정에 출석하지 않는 등 재판 내내 무변론으로 대응한 학부모를 제외한 피고인 대부분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게 재판부 결론이었다.

딸은 SNS로 괴롭힘을 당했다

지원이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지원이는 이후 서울 강남지역 중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도 친구들과 이런저런 다툼에 휘말렸다.

이씨는 딸이 친구들로부터 각종 사이버 폭력에 시달렸다고 했다. 한 친구는 페이스북에 딸에 대한 불만과 비난 글을 올렸고, 자신들을 '선배'라고 지칭한 학생 5명은 딸을 카카오톡 단체방에 초대한 뒤 2시간 동안 'X산이 딸아', 'X까 X신아' 등의 욕설을 보냈다. 이씨는 초등학교 시절 지원이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생각한 학생이 앙심을 품고 벌인 일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학교도 지원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았다. 지원이는 상담교사에게 불안 증세를 호소했지만, 학교는 괴롭힘 정도가 심했던 한 학생에 대해 접근금지 처분만 내렸다. 해당 학생에 대한 전학을 요구했던 이씨는 학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딸을 인천 소재 학교로 전학시켰다.

비극은 몇 년 후 찾아왔다. 중학교를 졸업한 딸을 강남지역 고교에 입학시킨 게 화근이었다. 고교 친구들이 '강화도 꼬마'라고 놀리기 시작했고, 지원이는 수학여행 버스에서 혼자 앉아야 하는 등 '은따'(은밀한 따돌림)에 시달렸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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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는 결국 친구들에게 "내 장례식장이 있다면 와줄 거야?"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 극단적 선택을 했고, 병원에서 35일간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뒀다.

트라우마 자극 집단 따돌림... 법원은 "인과관계 부족"

이씨 등 유가족들은 고교 학우들의 집단 따돌림이 중학교 시절 지원이의 학폭 트라우마를 자극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사고 전 지원이 친구들이 모여앉아 자기를 욕한다며 울음을 터뜨렸다"며 "사고 전에도 자퇴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인권위원회에서 지원이를 심리부검한 자료도 근거로 제시했다. 이씨는 딸이 중학생 시절 폭행도 당해 트라우마가 극심했다고 했다.

법원은 그러나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이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사이버 폭력은 사고 발생 3년 전 일이기 때문에 지원이의 극단적 선택과 인과관계가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채팅방 사건과 SNS 비방 이후 3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 사고가 발생했다"며 "상당한 인과관계가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가해학생들을 고소해 2명이 가정법원으로부터 소년보호 처분을 받았으므로 어느 정도 피해 감정을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조치를 내렸어야 할 고교에 대해서도 "지원이가 외부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보호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학교폭력 손해배상 책임 인정 쉽지 않아

이씨는 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씨는 "사이버 폭력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를 남기는데 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것이냐"고 호소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학폭 분야 '1호' 인증을 받은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는 "사건 발생 전부터 치료받은 전력이 있고 복합적인 사건에 따른 정신적 트라우마로 극단적 선택의 경우 인과관계를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학폭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는 일은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대법원 판례상 학교폭력은 '지속성'과 '피해 예측가능성',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을 때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

이씨는 항소를 검토하고 있다. 이씨는 "학교폭력을 어린 시절 당하면 그 트라우마는 시간이 갈수록 옅어지는 게 아니라 평생 상처로 남는다"며 "학교폭력 트라우마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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