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언론 통제 속 전쟁 난 사실 모르기도
페북ㆍ트위터 차단 이어 넷플릭스ㆍ틱톡 철수
갈 곳 잃은 러시아인의 눈… BBC 트래픽 폭증
우크라인 친인척 1100만 중심 반전 여론 커져
“전쟁이 났는데도 (러시아에 사는) 아버지는 저에게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어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미샤 카치우린(33)은 답답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결국 그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자녀들과 아내를 대피시키려 애쓰고 있다”며 러시아군의 민간인 폭격 사실을 전하자, 그의 아버지는 “아냐, 그럴 리가 없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아버지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나치 소탕을 위한 특수작전만 수행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에 있는 친인척과 이와 비슷한 내용의 통화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러시아와 전쟁이 났다는 사실조차 부정하는 이들과 직면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폭압적인 언론 통제를 벌인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국영 언론 중심으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탈나치화하는 명예로운 임무를 맡아 제한적 작전만 수행하고 있다는 정보만 일방향으로 제공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만이라도 제대로 기능했다면, 러시아에서 이런 기막힌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새 언론법을 만들어 SNS도 단속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논란을 러시아군에 대한 ‘가짜 뉴스’로 간주, 이를 퍼뜨리는 사람에게 최대 15년의 징역형 선고를 가능케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미 블룸버그통신, ABC와 CNN방송, 영국 BBC와 캐나다 CBC 등 주요 언론이 러시아 내에서 취재와 보도 활동을 중단했다. 공유 플랫폼인 넷플릭스와 틱톡도 이날부터 러시아 내 서비스를 대부분 차단했다. 러시아 당국은 자국 매체를 차별한다며 페이스북 접속을 차단했고, 트위터도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며 접속을 제한시켰다. 정부의 통제로 인해 러시아인 대부분은 러시아어를 쓰는 기성 매체와 SNS, 그 어디에서도 우크라이나 침공의 진상을 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러시아인들이 해외 뉴스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은 러시아인들이 찾는 매체는 영국 BBC뉴스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러시아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정보를 얻으려고, 유럽의 가장 큰 뉴스 공급 매체 가운데 하나인 BBC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BBC의 최근 자체 집계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콘텐츠를 찾는 트래픽(방문 횟수)이 최근 폭증했다. 푸틴 대통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국 언론 보도의 대안을 찾고 있다는 신호인 셈이다.
NYT에 따르면 러시아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친인척은 약 1,100만 명에 이른다. BBC 등 해외 언론을 통해 드러난 우크라이나 침공의 참상이 이들을 중심으로 확산될 경우 러시아 내 반전 여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러시아의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인 'OVD-인포'는 이날 하루에만 러시아의 56개 도시에서 일어난 반전시위로 최소 4,366명이 구금됐다고 밝혔다. 전쟁 이후 러시아에서 반전시위로 체포된 시위자는 1만3,000명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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