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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 영광을

입력
2022.03.07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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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6일 오전 서울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6일 오전 서울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나도 다른 이들과 같다. 자기 목숨이나 자녀의 목숨을 잃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잘못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대통령으로서 그런 일을 두려워할 권리가 없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근 외신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실존적 개인의 나약함과, '전시 지도자'라는 자리의 엄중함을 함께 고백했다. 솔직한 인간의 얼굴을 한 젤렌스키의 이 말은, 어떤 무기보다 강력하게 느껴졌다. 국민들을 단순히 독려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선한 영혼을 깨우고 용기를 채우는 '대국민 말 걸기' 방식이기 때문이다. '두렵지만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대통령을 따라 우크라이나인들은 똘똘 뭉치고 있다.

세계적 권투 스타였던 키이우(키예프) 시장도, 국회의원 100명도 총을 들었다. 여성들도 입대하고 해외에서 활동하던 스포츠 스타와 뮤지션도 싸우기 위해 속속 귀국하고 있다. 모든 군사력의 지표는 러시아의 우위를 보여주지만, 단결과 투지는 우크라이나의 것이다. 집에 있는 딸을 안심시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는 우크라이나 군인의 짧은 영상도 화제가 됐다. 이 군인 역시 아이의 자유로운 미래를 위해, 두렵지만 두려워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다큐멘터리 '윈터 온 파이어: 우크라이나의 자유 투쟁'(2015)을 봤다. 2013년 말부터 93일간 수도 키이우에서 일어난 유로마이단 시위를 다룬 작품이다. 친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유럽연합(EU)과의 무역 협정을 무기 연기한 게 시위의 발단이 됐다. 평화롭던 시위는 특수 경찰의 무자비한 발포로 유혈 참극이 됐다. 190명이 죽거나 실종됐으며 1,800여 명이 부상당했다. 광장에 선 시민들의 목소리는 하나였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우리는 자유 세계의 일원이 될 것이다." 시위대에 굴복한 야누코비치는 결국 러시아로 망명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우리는 23년 동안 겉으로만 독립국가였지만 이제 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진정한 독립국가가 됐다"고 감회를 밝혔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자 이번 전쟁이 새롭게 보였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지정학적 운명과 자국의 정치적 혼란을 넘어, 진정한 자유 민주국가의 일원이 되길 원했다. EU 가입은 그 담대한 여정 중 하나였다. 젤렌스키를 압도적 지지로 뽑은 것도, 그런 열망의 표출이었다. 그러므로 유로마이단 항쟁과 지금의 전쟁은 같은 싸움이다. 다큐멘터리 끝자락에 나오는 한 시민의 내레이션처럼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번 전쟁은 전 세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며, 폭정과 압제가 승리하도록 내버려두면 그 대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국기가 광활한 밀밭과 푸른 하늘을 형상화한 것도 이번에 알았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밀밭은 대지의 풍요와 강인한 생명력을, 푸른 하늘은 영원한 자유를 상징할 것이다. 이 세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자유를 막아서는 그 어떤 패권적 행태도 '현실주의 정치'의 이름으로 합리화할 순 없다.

비장한 단조로 된 우크라이나 국가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크라이나의 영광과 자유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 형제들이여 운명은 그대들에게 미소 짓고 있도다." 운명이 있다면 지금 우크라이나에 미소 지어야 마땅하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이주엽 작사가·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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