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부실 선거' 부인 어려워
'부정 선거'로 볼 근거는 부족
지난 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에 대한 사전투표가 극심한 혼란 속에서 치러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안일한 준비와 현장 대응을 두고 질타가 거센 가운데, ‘부정 선거’ 의혹마저 일각에서 제기됐다. 선관위와 정치권의 설명, 공직선거법 규정 등을 바탕으로 대혼란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부정 선거 소지가 정말로 있는지를 살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선관위의 오판에 따른 부실 선거’임은 분명하지만, ‘부정 선거’로 보긴 어렵다. 쟁점과 의혹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Q. 확진ㆍ격리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정식 투표함에 직접 넣지 못한 건 왜인가.
A: 불가피한 일이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확진자ㆍ격리자와 일반 선거인의 동선을 나눴지만, 투표함을 별도로 설치할 순 없었다. 공직선거법에 '투표구마다 선거구별로 동시에 2개의 투표함을 사용할 수 없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관내 선거인과 관외 선거인 투표함은 선거구가 다르기 때문에 따로 둘 수 있었다).
Q. 투표용지를 제3자가 대신 넣은 것은 '직접 선거' 원칙 위배 혹은 선거법 위반 아닌가.
A: 선거법(157조 4항 및 158조 4항)은 선거인이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맞다. 선관위는 "코로나19 감염자 폭증이라는 특수상황에서 확진·격리자 투표를 위해 선거법에 따라 마련한 투표방법이었으니 불법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설명한다. 2020년 총선과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에서도 격리자에 대해 같은 투표 방법을 사용했다는 반례도 든다. 당시엔 격리자 투표자가 적어서 논란이 생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직접 선거 원칙 위배 논란의 소지를 감안해 중앙선관위는 9일 본투표에서는 임시 기표소를 없애고 확진ㆍ격리자가 비감염자 투표가 끝난 뒤 일반 기표소에서 투표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Q: 투표용지를 왜 바구니, 택배 상자, 비닐백 같은 허술한 곳에 담아 옮겼나.
A: 선관위가 "바구니나 상자를 쓰라"는 지침을 각 투표소에 내려보낸데 따른 것이다. 투표용지 운반 도구(임시 보관함)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부정선거 소지가 없다고 선관위는 설명한다. 밀폐된 ‘007가방’ 등을 썼다면 부정 투표용지가 섞여 들어갔다는 의심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관위가 안전하고 규격화된 임시 보관함을 도입하지 않은 것은 비판이 불가피하다.
Q: 확진ㆍ격리자 사전투표가 참관인 없이 진행된 투표소도 있다.
A: 투표소별로 경위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선관위는 확진·격리자용 임시 기표소 참관인을 대선후보별로 1명씩, 총 2~6명까지 지정할 수 있게 지침을 내렸다. 확진ㆍ격리자가 몰려든 일부 투표소에서 일반 기표소와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를 동시에 하는 바람에 참관인이 부족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선관위는 참관인용 방호복을 투표소 1곳당 6벌씩만 지급하는 등 기본적 대비에 소홀했다."
Q: 확진자들이 몇 시간씩 야외에서 줄을 섰다는 불만도 속출한다.
A: 선관위가 확진ㆍ격리자 선거인 수를 과소 예측한 탓이 크다. 전국 어느 곳에서나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의 특성상 특정한 투표소에 확진ㆍ격리자가 많이 몰릴 수 있다는 점도 간과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사전투표에 대해선 확진ㆍ격리자 투표 시간을 별도로 정하지 않은 데 있다. 지난달 여야는 확진·격리자는 본투표일인 9일 오후 6시부터 오후 7시 30분 사이에 투표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6일 "국회 정개특위에서 '사전투표도 본투표처럼 오후 7시30분까지 시간을 연장해 확진·격리자를 위한 별도 투표 시간을 내달라'고 선관위에 요구했지만, 선관위는 ‘철저하게 준비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시종일관 반대했다”고 전했다. 선관위가 오판한 셈이다.
Q: 투표소마다 임시 기표소가 어느 곳은 야외에, 어느 곳은 실내에 있는 등 제각각이었다.
A: 투표소 사정에 따라 임시 기표소 설치가 가능한 공간에 임의로 설치하도록 지시한 선관위 지침에 따른 것이다. 투표소 건물 구조가 제각각이라 임시 기표소를 전부 실내에 차릴 수 없었다는 해명이지만, 이로 인해 확진ㆍ격리자들이 야외에서 장시간 대기하는 문제가 생겼다. '탁상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Q: 서울 은평구 투표소에선 특정 대선후보로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가 배부돼 부정 선거 의혹을 키웠다.
A: 은평구 신사1동 주민센터에서 확진ㆍ격리자 사전투표가 진행되던 중 일부 선거인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기표된 용지가 든 투표를 받았다. 부산 연제구 연산4동 투표소에서는 일부 확진ㆍ격리자 선거인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 후보 등에게 기표된 투표 용지를 받기도 했다. 각 지역 선관위는 "선거사무원 착오로 인한 실수"라고 해명했다.
확진ㆍ격리자에게는 투표용지 1장과 임시기표소 봉투 1장씩 지급하는데, 이 때 빈봉투 대신 다른 선거인이 기표한 투표용지가 담긴 봉투를 실수로 건넸을 가능성이 있다.
바구니 등 임시 보관함에 넣어 둔 기표된 투표용지 봉투를 빈 봉투로 착각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당시 은평구 투표소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면 해당 선거인은 빈 투표용지와 함께 받은 봉투에서 이 후보가 이미 기표된 별도의 투표용지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중앙선관위는 "정확한 사실 관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답했다. 고의성이 확인된다면 선거법상 투표위조죄 등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Q: 핵심은 부정 선거 여부다. 부정 선거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나.
A: 사전투표 선거 관리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것은 맞지만, 그것이 부정 선거 가능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야도 파장을 우려해 '부정 선거'를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다만 대선 개표 결과 1, 2위 후보의 득표율에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면, 패배한 쪽에서 부정 선거 의혹에 불을 지피는 소재로 삼을 가능성이 우려된다. 투표용지 분실, 기표된 투표용지의 배부 등 황당한 사고에 대해선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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