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여제’의 시즌 시작을 알리는 완벽한 오프닝이었다. 고진영(27)이 시즌 첫 출전 대회에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연속 60대 타수 기록과 연속 언더파 기록을 모두 갈아 치우며 우승까지 따냈다. 선두와 3타차가 벌어진 13번홀부터 4연속 버디를 잡아내는 무서운 뒷심은 자신이 왜 세계 1위인지를 스스로 증명한 순간이었다.
고진영은 6일(한국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클럽 탄종 코스(파72)에서 열린 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총상금 170만 달러·우승 상금 25만5,000달러)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6언더파 66타를 쳐 4라운드 합계 17언더파 271타로 정상에 올랐다.
15언더파로 공동 2위에 오른 전인지(28), 이민지(호주)를 2타차로 따돌린 고진영은 이번 시즌 첫 출전 대회를 우승으로 장식하면서 통산 13승 고지에 올랐다. 고진영은 최근 참가한 10개 대회에서 6차례나 정상에 오르는 절정의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근소한 포인트 차이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진영은 이번 우승으로 2위 넬리 코다(미국)와의 차이를 더욱 벌리게 됐다.
고진영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과 함께 또 다른 기록의 주인공도 됐다. 그는 15라운드 연속 60대 타수와 30라운드 연속 언더파라는 두 가지 신기록을 작성했다. 60대 타수는 지난해 열린 BMW 챔피언십 2라운드부터 이어왔고, 에비앙 챔피언십 4라운드부터 언더파 스코어 행진도 계속했다.
특히 두 기록 모두 '영원한 골프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을 넘어선 것이라서 의미가 더했다. 연속 라운드 60대 타수 종전 기록은 소렌스탐, 유소연(32), 그리고 고진영이, 연속 언더파 라운드 종전 기록은 소렌스탐과 리디아 고(뉴질랜드)가 가지고 있었다.
석 달 넘게 경기에 나서지 않았지만, 고진영의 샷과 퍼트는 여전히 예리했다. 이날 아이언이 그린을 놓친 것은 딱 한 차례뿐일 정도로 위력을 발휘했고, 퍼트수도 총 29개로 나쁘지 않았다.
특히 고진영은 코스 난도가 높은 후반에 더 강했다. 앞선 1∼3라운드에서 후반 9개 홀에서 33타-34타-33타를 쳤던 고진영은 이날도 후반 9개 홀에서 32타를 적어내며 역전극을 펼쳤다.
7번 홀까지 고진영은 버디를 하나도 잡아내지 못해 우승 경쟁과 함께 기록 달성도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이정은(26)과 전인지, 아타야 티티쿨(태국)이 버디를 쓸어 담으며 저만치 앞서나갔다. 8번 홀(파5)에서 버디 물꼬를 튼 고진영은 9번 홀(파4)에서 버디를 보태며 추격에 시동을 걸었다.
고진영의 뒷심은 무서웠다. 12번 홀(파4)에서 보기로 선두 이정은에게 3타 차까지 뒤졌지만 13번 홀(파5)부터 16번 홀(파5)까지 4연속 버디 쇼를 보여주며 공동선두로 치고 올랐다.
고진영은 승부사답게 18번 홀(파4)에서 쐐기를 박았다. 이정은과 공동 선두로 18번 홀을 맞은 고진영은 페어웨이에서 핀을 보고 곧장 아이언을 때린 뒤 내리막 3m 버디 퍼트를 집어넣어 승부를 갈랐다.
반면 이정은은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린 데 이어 벙커와 러프를 오간 끝에 더블보기를 적어냈다. 두 선수의 희비가 교차한 상황이 됐다. 결국 이정은은 티티쿨과 함께 공동 4위(14언더파 274타)에 만족해야 했다. 4타를 줄인 양희영(33)이 공동 6위(13언더파 275타), 6언더파를 친 김아림(27)이 공동 9위(11언더파 277타)를 차지했다.
고진영은 우승 후 “지난해 신기록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며 “하지만 빠른 시일 안에 다시 기회를 잡고 압박감 속에서 그걸 깨면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걸 증명해 스스로 자랑스럽다. 꿈만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진영은 다음 주 태국에서 열리는 혼다 LPGA 타일랜드에는 참가하지 않고 귀국한 후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더 셰브론 챔피언십(전 ANA 인스퍼레이션)을 겨냥해 미국 캘리포니아로 출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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