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형 화가
서예 서각으로 출발, 본격 미술에 뛰어들어
문자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
평론가 "자유로운 삶을 위한 일탈 유희 담겨"
조승형 작가는 대중들에게 '부적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화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관람객들이 워낙 "부적을 연상시킨다"는 말을 쏟아놓고 가는 바람에 지난해 12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개인전의 타이틀도 '문자 추상-행운의 부적'이라고 붙였다.
서각으로 입문한 예술의 세계
굳이 '부적'이라는 생각 없이 보아도 그림 속에는 어떤 기원이나 소망이 넘실댄다. 제목만 봐도 '대길상집' '결실' 등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할 때 쓰일 법한 단어들을 싹 모아둔 느낌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작가에게 오래된 습관이다. 늘 풍파에 부대낀 삶이었기 때문이다.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순순히 흘러온 시간이 거의 없다. 서른넷에 청상이 된 어머니와 누님 둘, 동생 셋만 세상에 덩그러니 남았다. 기둥이 뽑힌 집안은 늘 위태했고, 조 작가는 먹고살 길을 찾아 전북 정읍에서 혼자 대구로 향했다. 가진 게 하나도 없었지만 다행히 손재주가 뛰어났다. 손으로 만드는 일은 무엇이든 자신 있었다. 섬유 기계를 제작하는 회사에 다니다 91년에 자신의 회사를 열었고, 동시에 ‘예술’을 시작했다.
시작은 서각이었다. 서예를 기본으로 전서와 금문을 즐겨쓰며 서예술의 상형문자 미학에 심취하였다. 하지만 서예와 서각만으로 충족할 수 없었다. 본격 미술에 천착하고 싶었다. 이후 뒤늦게 미대로 진학해 미술가의 꿈을 키웠다.
그에게 예술은 개자리였다. 아궁이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구들장 밑 고래를 지나 제자리돌음을 하면서 재와 그을음 따위를 토해내는 곳. 서각 혹은 미술에 열중하다 보면 낮에 쌓인 스트레스가 어느새 훌훌 털려나가고 깨끗하고 순수한 에너지가 온몸에 충일해지는 느낌이었다.
가족들을 위해 아버지가 남기고 간 누옥 한 채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같은 황망한 상황은 생에서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외환위기(IMF)때는 회사가 부도나고, 밀린 대금을 받으려고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4달 동안 채무자를 찾아다니다 노숙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나쁜 생각까지 했다. 자식들이 눈에 밟혀 차마 그러지 못했다. 절망을 딛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 2009년 무렵에 미국과 유럽에 기계 수출을 재개할 수 있었다.
삶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이 미술 활동이다. 나무를 깎고 파는 단순한 작업을 벗어나 미술이라는 본격 창작의 세계로 들어서면서 작품의 깊이와 그로부터 얻는 희열의 차원이 달라졌다. 단순히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을 넘어 '나'를 표현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 대목에서 그의 삶은 다시 아버지에게로 회귀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부터 큰길 옆에 땅을 사서 집을 지었어요. 살림도 하고 가게도 열 수 있는 집이었어요. 집을 완성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죠."
아버지가 남긴 집은 단순한 집 이상이었다. 당신이 떠나고 난 뒤 남아서 살아갈 처와 자식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자 기원이었다. 가장 없이 살아가야 할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알뜰하게 다듬고 어루만졌을 목재와 흙에 깃든 간절한 소망들이 조 작가의 부적으로 환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대길상집' '상생' '결실' '교감' 같은 단어는 어쩌면 아버지가 집을 지으시면서 가장 자주 되뇌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스스로 생명을 가진 조형 문자들
그러나 예술 작품은 부적을 닮아도 부적은 아니다. 엄연히 예술은 예술의 경지를 품고 있어야 한다. 아버지는 서른일곱의 나이에 작고했다. 아들은 ‘영원한 젊음’을 얻은 아버지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었다. 나이를 먹은 만큼 아버지를 포함하고 있는 자아를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주성열 세종대학교 예술대학 겸임교수 평론을 참고하자면 그의 작품은 "정형적인 문자와 형상을 해체한 것을 넘어, 규범이나 보편의 가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위한 일탈과 유희까지" 보인다. 일탈이나 유희는 모두 스스로를 극복해가는 달관의 과정을 달리 부르는 말이 아닐까.
그의 조형 언어는 자아를 초월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문이다. 주 교수는 그의 조형 문자를 두고 "물활론(物活論)의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스스로 생명을 지닌 문자들을 창조했다는 해석이다. 티끌이 온 우주를 담고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처럼, 그의 그림 역시 그가 만난 새로운 세상이자,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디딤돌이다.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들이 물고기 떼처럼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고 더 초월적인 세계로 정진하는 중이다. 그의 예술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역동적인 여정인 셈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의 예술적 정진의 동력은 여전히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주 교수의 말마따나 그의 그림은 위트, 재치, 익살, 해학이 넘쳐나지만 간절한 기원이나 소망을 담고 있다. 기원이나 소망은 아버지의 다른 이름이다. 이를테면, 작가의 예술 활동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혹은 영원히 아버지와 함께하는 위대한 창조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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