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관, 리노베이션 마치고 첫 봄맞이
국내 최초의 여관, 전남 해남에 위치한 유선관이 한옥 스테이로 재단장을 하고 첫 봄을 맞았다. 유선관은 바로 옆 대흥사를 찾아온 수도승이나 신도의 객사로 쓰기 위해 1914년 지어진 후 10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 온 문화 유산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저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다수의 TV 프로그램에 등장한 지역 명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고(最古)'라는 간판을 떼고 나면, 불편하고 낡은 숙소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져 갔다.
김대균 착착건축사사무소 소장, 배시정 비애이컬처 대표가 유선관 위탁 사업자의 의뢰를 받아 약 1년 반 동안 진행한 리노베이션은 과거에 갇힌 유선관에 생기를 불어넣는 과정이었다. 건축가인 김 소장이 설계와 공사 전반을 맡고, 배 대표가 브랜딩과 운영 서비스를 개선해 지난해 9월 다시 문을 열었다. 김 소장은 "유선관이라는 이 전통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이어지도록 지금 우리가 하나의 층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마주한 유선관의 첫 인상은 '어수선하다'였다. 대흥사 소유의 유선관은 이를 운영하는 위탁 사업자가 대여섯 번 바뀌었고, 그때마다 필요에 따라 곳곳을 조금씩 손본 탓이다. 한옥과 어울리지 않는 PVC 창호가 설치돼 있고, 시멘트 보도블록이 깔려 있었다. 통일감이 느껴지기보다는 재료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누더기 같았다. 부지 한쪽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놓여 있었다. 건축가는 PVC 창호를 전통 창호로 교체하고, 보도블록을 걷어낸 자리에 마사토를 덮는 등 어긋난 결을 다듬어 전통 한옥 양식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해 냈다.
중정에 있던 조경, 꽃과 나무는 비워냈다. 시선이 건물 내부가 아닌 외부로 향하게 하기 위함이다. "한옥 스테이가 유행이잖아요. 건축가로서 한옥이 왜 좋을까 생각해 보면 외부 공간과 굉장히 유연하게 연결돼 있다는 거죠. 서까래, 창 같은 한옥 본연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한옥에서 더 주목할 만한 건 건물과 마당, 자연과의 관계더라고요. 그래서 마당을 비움으로써 주변 자연으로 시선이 열리도록 했습니다. 조경보다는 저 멀리 산이나 산과 용마루 사이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한 거죠."
오래된 한옥에서 지낼 때의 불편함을 줄이는 데도 집중했다. 단열을 위해 기존 여닫이 문 외에 미서기 문을 추가로 달았다. 특히 9개이던 객실을 6개로 줄이는 대신, 외부에 있던 공동 화장실과 공동 샤워실을 내부로 들여 각 방에 개별화했다. 카페와 스파도 새로 만들었다. 그저 유서 깊은 장소가 아닌 사람들이 묵고 싶은 숙소를 만들려면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조식이나 웰컴티, 침구의 종류와 제공 방식도 브랜딩 디렉터와 건축가의 상의를 거쳐 결정됐다. 공간의 형태와 이를 채우는 서비스는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방으로 소반을 들일 건지, 쟁반을 들일 건지에 따라 문의 폭이 달라져야 한다. 배 대표가 숙소에서 제공할 이불을 정하고, 이를 접었을 때의 높이를 알려주면 김 소장이 이에 맞춰 붙박이 수납장을 제작하는 식이었다.
배 대표는 "요즘은 숙소가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숙소 때문에 여행을 가기도 한다"며 "사람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모두 찾아오는 숙소, 대흥사에 템플스테이 하러 오는 외국인도 편하게 쉴 수 있는 숙소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유선관을 찾던 이들은 두륜산 계곡의 피서객이 대부분으로, 주로 여름철에 수요가 집중돼 왔다.
이들은 유선관이 단순히 몸을 누이는 숙소를 넘어, 개인에게는 사색의 공간으로, 지역에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김 소장은 "과다 접속의 시대에 유선관에서 다른 곳과 단절되는 대신 온전히 자기와 연결되는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며 "나아가 스테이로서의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주민들이 잔치나 공연을 열고 즐길 수 있는 해남 문화의 구심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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