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 FIFA 등 러시아 선수·팀 출전 배제 권고
디즈니는 러시아서 영화 개봉 중단
러시아 내 문화계도 반전 여론 강세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국제 스포츠 기구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속속 등을 돌리고 있다. 전쟁 반대 기류가 정부와 시장을 넘어 문화계와 스포츠계까지 번지면서 러시아 안팎의 반전(反戰) 여론에도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달 28일 각 국제 스포츠 대회 조직에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 및 관계자를 배제하라"는 권고를 내놨다. IOC는 이날 집행이사회 회의 뒤 성명을 통해 "국제 스포츠 대회의 무결성을 보호하고 참가자 안전을 고려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IOC는 2001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수여된 올림픽 훈장도 철회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 역시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FIFA는 1일 "앞으로 러시아 국가대표와 클럽팀은 FIFA 주관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FIFA는 당초 이들의 출전을 허용하려 했으나, 당장 러시아와 월드컵 예선전을 눈앞에 둔 폴란드, 체코, 스웨덴 등이 러시아 팀과 경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이런 결정을 내렸다.
UEFA와 독일 프로축구팀 FC 샬케 04 등도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즈프롬과의 스폰서 파트너십을 중단키로 했다고 밝혔다. UEFA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기로 했던 이번 시즌 유럽 클럽대항전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개최지를 프랑스 파리로 변경한 바 있다.
테니스에서도 지난달 28일 남자 랭킹 1위에 오른 러시아 출신 다닐 메드베데프 등을 당분간 대회에 참가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단 국제테니스연맹(ITF)은 올해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대회를 열지 않는다고 밝혔다. 메드베데프와 랭킹 8위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쟁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했다.
볼쇼이 극장 총감독도, 베니스 비엔날레 작가들도 '반전 운동' 동참
문화계 역시 러시아와 차례로 관계를 단절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영화제작사인 디즈니와 워너 브라더스, 소니픽처스 등은 28일 자사가 제작한 모든 영화의 러시아 내 개봉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기업인 넷플릭스도 러시아 국영 방송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내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대거 반전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클래식 전문 매체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과 긴밀한 사이로 알려진 볼쇼이 극장의 블라디미르 유린 총감독과 세계적인 지휘자 겸 바이올리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 등이 지난달 26일 "무장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는 청원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릴 예정이던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공연은 취소됐다.
또 올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러시아 국가관 전시는 대표 작가 알렉산드라 수하레바·키릴 사브첸코프와 예술감독을 맡은 큐레이터 라이문다스 말라샤우스카스가 전쟁 반대를 선언하며 모두 사퇴해 전시 자체가 열리지 않게 됐다. 이들은 "민간인이 미사일 공격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대피소에 숨어 있을 때, 러시아 시위대가 침묵을 당하고 있을 때 예술이 설 자리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1990년대 이래 푸틴 대통령의 절친으로 통하는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국제 문화계에서 '고립'될 처지다. 그는 지난달 25∼27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지휘할 예정이었으나 다른 지휘자로 교체됐다. 같은 공연에 출연할 예정이었던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 역시 친푸틴 성향 문제로 교체됐는데, 이 자리에 한국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대신 연주를 펼쳤다.
게르기예프의 유럽 지역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마커스 필스너도 지난달 27일 그와의 계약 관계를 철회한다고 발표했으며, 독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각각 상임지휘자와 명예지휘자 직을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마이클 맥폴은 미국 뉴욕타임스에 "국제사회의 대규모 제재와 반전 운동에 러시아인은 고립감을 느낄 것"이라며 "특히 해외 여론에 민감한 도시 거주 엘리트 사이에서 반전 여론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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