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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침공 대가’ 치르는 러시아 경제… 뱅크런부터 디폴트 우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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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침공 대가’ 치르는 러시아 경제… 뱅크런부터 디폴트 우려까지

입력
2022.03.01 19:10
수정
2022.03.01 19: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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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사려면 전주보다 1.5배 더 내야
물가 상승 예고에 상품 사재기 이어져
러 정부, 부랴부랴 해외 달러 송금 금지
"러 외환보유고 15% 中에… 中 도울 것"

지난달 28일 러시아 모스크바 스베르방크에서 한 시민이 인출한 현금을 세고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러시아 모스크바 스베르방크에서 한 시민이 인출한 현금을 세고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달러와 상품 사재기부터 더 커진 이자 부담까지. 러시아 국민들이 치러야 하는 값비싼 침공 대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이 경기 경색이라는 역풍으로 돌아온 셈이다. 러시아 정부가 극단적 금융통제 조치까지 내놓으며 방어에 나섰지만 허약한 경제 체질만 드러내는 모양새다. 장기전으로 이어질 경우 국가 부도를 선언할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을 종합하면, 서방의 금융 제재 충격파는 민간부터 덮쳤다. 러시아 전역의 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와 환전소 앞은 이틀째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루블화가 휴지 조각이 되면서 시민들이 앞다퉈 달러를 빼내고 있는 까닭이다. 한 주 전(달러당 80루블)보다 1.5배 이상 비싼 110~150루블에 사야 하지만 그마저도 동이 났다. 모스크바 시민 블라디미르씨는 “한 시간 동안 줄을 섰지만, 외화는 없고 루블화밖에 안 남았다”고 말했다.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우려는 날로 커진다. 전날 하루 동안 러시아 은행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140억 달러(약 16조 원)에 달한다. 짧은 시간 안에 시민들이 돈을 빼내면서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의 유럽 자회사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물건 사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가전제품 가격은 한 주 만에 30%나 뛰었다. 한 식료품 브랜드는 달걀을 인당 9개로 제한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물가 상승이 예고되면서 일부 매장에서는 상품 사재기가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출자들 앞에는 난관이 하나 더 있다. 전날 금융당국이 루블화 환율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올리면서 이자 부담에 허덕이게 된 것. 러시아 국가부동산중개인협회 부회장은 “이제 러시아인들은 모기지(주택담보대출)에 작별 인사를 고해야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날 러시아 국채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50% 이상 폭락했다. 푸틴 대통령의 위험한 야심이 불러온 후과를 애꿎은 시민들이 받게 된 셈이다.

지난달 2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환전소 앞에 미국 달러와 유로화 환율이 표시돼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EPA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환전소 앞에 미국 달러와 유로화 환율이 표시돼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EPA 연합뉴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러시아는 자본 통제에 나섰다. 크렘린궁은 이날부터 러시아 거주민들이 해외 은행 계좌로 자금을 이체하는 것을 막기로 했다. 무역업자들에게도 외화 수입의 80%를 강제 매각하도록 했다. 달러가 귀해지자 나라 밖으로 돈이 빠져나갈 구멍을 완전히 막아버린 것이다. 민간의 경제활동마저 정부가 전면 통제하는, 이례적 조치까지 꺼내 든 것이다.

정부의 강수에도 러시아 경제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국제금융협회(IFF)는 이날 러시아가 달러로 발행한 채권에 대한 디폴트(채무상환불이행)를 선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국가 부도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외환보유액 절반 이상이 자산동결 제재를 가한 국가에 묶여 있는 까닭에, 상황이 길어지면 루블화 폭락에 쓸 수 있는 달러 유동성 화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게 이유다. 역성장도 불 보듯 뻔하다. 엘리나 리바코바 IFF 부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경제는 올해 10% 초반의 마이너스 성장률과 두 자릿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급하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 국제신용평가사 S&P는 러시아 국가신용 등급을 투자 부적격 수준인 ‘정크’로 강등한 상태다. NYT는 “푸틴이 되레 조국에 위기를 불러왔다”고 꼬집었다.

다만 일각에선 경제 충격이 오래 지속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믿는 구석은 중국이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는 “러시아 외환보유고의 15%는 중국에 있고, 중국 정부는 기꺼이 도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1,420억 달러에 달하는 금 비축량을 매각하며 숨통을 틔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금융시장 혼돈 속에 암호화폐 몸값은 급등했다. 이날 비트코인은 전날 대비 15% 이상 폭등해 한때 4만3,000달러(약 5,179만 원)를 기록했다. 이더리움도 10% 넘게 올랐다. 러시아인들이 대체 결제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뒤늦게 러시아의 암호화폐 거래 및 제재 우회와 관련한 차단에 나서기로 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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