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혜린이 죽음 내몬 10대들의 또 다른 범죄...소년법의 정의를 묻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혜린이 죽음 내몬 10대들의 또 다른 범죄...소년법의 정의를 묻다

입력
2022.02.27 14:00
수정
2022.02.27 17:28
0 0

본보 보도로 알려진 미성년자 잔혹 범죄 문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루며 여론 공분
사이버불링에 세상 등진 '혜린이 사건' 가해자들
반성은커녕 모텔 감금 집단폭행 범죄에도 가담

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소년심판 - 두 번의 '죄와 벌'. 홈페이지 캡처

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소년심판 - 두 번의 '죄와 벌'. 홈페이지 캡처

"소년심판 본방 보고 있는데 너무 화가 나네요. 만약 제 자식이 사건의 피해자가 됐다고 생각하면, 제가 범죄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가해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질 것 같은 마음마저 드네요."

26일 방영된 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소년심판 두 번의 죄와 벌'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한 학부모의 분노 가득한 절규다.

이날 그것이 알고싶다는 소년법 체계의 미비점을 악용해 더욱 잔혹해져 가는 미성년자 범죄에 대해 다뤘다. 지난해 6월 세상에 알려진 지적장애 여고생 집단폭행 사건의 10대 가해자들이, 2020년 9월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온라인상 괴롭힘)으로 한 여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가해자들과 동일인물이란 내용을 전하면서다.

이는 한국일보의 연속 보도 ▶혜린이의 비극, 그 이후(혜린이 죽음 반성한다더니… 가해자들 소년부 송치되자 유사 범죄)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다.

10대들의 범죄는 갈수록 극악무도해지고 있지만, 미성년자 보호를 이유로 10대 범죄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기 일쑤다. 문제는 이 같은 법의 선처를 악용해 풀려난 어린 무법자들이 반성은커녕 더 잔혹한 범죄에 가담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적장애 여고생 딸이 모텔에 감금돼 집단폭행을 당했다며 가해자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한 어머니의 글이 올라왔다. 가해자들은 딸 소영양(가명·16)의 친구들인 나리양(가명·18)과 유성군(가명·18). 이들은 지적장애 3급을 앓고 있던 소영양과 SNS를 통해 알게 된 사이였다.



한국일보 통해 알려진 미성년자 잔혹 범죄, SBS '그것이 알고싶다'서 방영

지난해 6월 21일 16세 지적장애 딸이 모텔에서 집단 감금 폭행을 알렸던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청원.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해당 사건 가해자 중 2명은 혜린이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이들인 게 뒤늦게 밝혀졌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지난해 6월 21일 16세 지적장애 딸이 모텔에서 집단 감금 폭행을 알렸던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청원.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해당 사건 가해자 중 2명은 혜린이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이들인 게 뒤늦게 밝혀졌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소영이 옆에서 손이 되고 발이 돼 주던" 살가운 친구들은 갑자기 돌변했다. 소영양이 자신들을 험담했다는 이유로 괴롭히기 시작하더니, 한 모텔로 끌고가 무자비한 집단 폭행과 고문까지 서슴지 않은 것. 이들의 범죄는 악랄했다. 소영양이 신고하지 못하도록 휴대폰을 빼앗고, 소영양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동영상 촬영까지 했다.

사건이 알려지면서 당시 여론은 들끓었고, 소년법 개정에 대한 찬반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현행법상 만 14세 이상 만 19세 미만 '소년'은 수사기관 또는 법원 판단에 따라 형사처벌과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 '교화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실제 처벌은 형사처벌이 아니라 보호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가장 무거운 처벌을 내린다는 보호처분 10호도 2년 소년원 송치 결정이 최대 처벌 수위다.

그런데 이번 모텔 감금 집단 폭행 사건의 가해자 중 나리양과 유성군은 2020년 9월 친구들의 사이버불링 등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장혜린(가명·16)양을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들이기도 했다.

이들은 친구들이 모여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방에서 과거 혜린양의 성폭행 피해 사실까지 퍼뜨리며 혜린양을 괴롭혔고, 성폭력 사건의 2차 피해로 고통 받던 혜린양은 나리양과 친구들을 만나고 온 날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들의 끔찍한 범죄는 한국일보 보도 ▶'혜린이의 비극, 그 이후' (이름·번호 바꾸며 삶에 의지 드러냈는데.. 가해자 선고 직전 극단 선택)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처벌보다 교화 앞세운 소년법... 태연한 가해자들, 피해자들만 고통 속에

성폭행 피해에도 이름과 번호를 바꾸며 삶에 의지를 드러냈지만 가해자 선고 직전 또래 학생들의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온라인에서 특정인 대상 집단적·지속적·반복적 모욕·따돌림·협박 행위)과 오프라인에서의 2차 가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혜린이(가명·16)의 방. 혜린이가 떠난 지 11개월이 지났지만 방은 생전 혜린이가 있었던 상태 그대로다. 지난해 5월 18일 가해자들에 대한 재판부의 소년부 송치 결정에 혜린 부모는 혜린 방에서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김영훈 기자

성폭행 피해에도 이름과 번호를 바꾸며 삶에 의지를 드러냈지만 가해자 선고 직전 또래 학생들의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온라인에서 특정인 대상 집단적·지속적·반복적 모욕·따돌림·협박 행위)과 오프라인에서의 2차 가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혜린이(가명·16)의 방. 혜린이가 떠난 지 11개월이 지났지만 방은 생전 혜린이가 있었던 상태 그대로다. 지난해 5월 18일 가해자들에 대한 재판부의 소년부 송치 결정에 혜린 부모는 혜린 방에서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김영훈 기자

혜린양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또다시 소영양을 집단 폭행하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10대 범죄자들. 하지만 이는 예견된 참사였다는 지적이다.

앞서 한국일보는 혜린양 사건 피의자들이 법원의 결정으로 형사처벌을 면한 채 소년부로 송치된 사실을 전하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감싸는 사법체계의 맹점을 ▶'혜린이의 비극, 그 이후'(법원, 죽은 혜린이 아닌 가해자들 감쌌다.. 형사처벌 면해) 보도를 통해 비판했다. 결국 어린 무법자들에게 법은 반성은커녕 어떠한 경고도 돼주지 못한 셈이다.

딸 소영양 사건으로 재판을 참관했던 어머니 윤희영(가명)씨는 가해 아이들을 보며 분노를 삼켜야 했다고 SBS 방송에서 토로한다. 판사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던 아이들이 재판정 밖 대기실에선 아무런 반성의 기색도 없이 웃음을 터트리며 떠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입장 확인을 위해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연락해 본 가해 아이들의 반응은 너무나도 태연했고, 담담했다.

"우리는 이미 재판도 다 끝났고 판사님께서 벌도 하사하시고, 피해자께서 용서해주셔서 끝난 건데, 왜 지금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두 범죄 사건의 가해자인 나리양)

"다 끝난 일"이라고 태연히 말하는 가해자들. 하지만 혜린양의 가족들은 소중한 딸을 떠나보낸 그날의 지옥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고, 소영양 역시 폭행당했던 공포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윤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