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파도 앞에선 죽음을 생각하라"
"팬데믹은 죽음 통해 황폐화된 개인 응시하게 된 것"
"문화부 장관으로 잘한 일은 '노견'을 '갓길'로 바꾼 것"
"민아야 오래 못 본 내 딸아. 이제 마음껏 울어도 좋다"
"넘버원이 되지 말고 온리원이 돼라"
"정상에 오를 만하면 의도적으로 갈증 남기고 떠나"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26일 별세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생전에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라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지난해 10월 출간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다.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지은이와의 대담에서 이 전 장관은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항상 좌우로 흔들린다"며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라"고 했다.
고인은 삶 자체가 메시지였다. 말년의 이야기는 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그는 2017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자신의 이름 ‘영’과 부인 강인숙 여사의 이름 ‘인’을 따서 지은 영인문학관에서 집필 활동과 언론 인터뷰를 이어 가며 인생 후배들에게 지혜를 건넸다.
총 20권 분량으로 계획된 '이어령 대화록' 시리즈 1권으로 지난달 출간된 '메멘토 모리'를 통해서도 삶의 본질적 물음에 답했다. 책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1987년 별세 한 달여 전 가톨릭 신부에게 물은 24가지 질문에 대해 고인이 자신의 관점으로 답한 대담집이다. 책에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사유도 담겨 있다. 고인은 "죽음을 통해 황폐화된 개인을 응시하게 된 것이며 죽음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두고 볼 일"이라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를 다시 깨닫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2012년 먼저 떠나보낸 장녀 이민아 목사를 생각하며 쓴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2016)에서도 죽음을 성찰했다. 고인은 딸의 10주기가 가까워지자 지난해 개정판을 내고 "네가 떠난 지 어언 십 년이 되어가는구나. 지금 너의 눈물 자국마다 꽃들이 피어나고 너의 울음소리마다 꽃을 노래하는 새소리가 들려온다"고 서문을 새로 썼다. 고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듯 "민아야. 이제 눈치 볼 것 없이 엉엉 울어도 된다. 만나서 기쁜 울음인 거다. 민아야 오래 못 본 내 딸아. 이제 마음껏 울어도 좋다"고 적었다.
한국 문화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 고인이지만 스스로 문화부 장관으로서 가장 잘한 일은 '노견(路肩)'을 '갓길'로 바꾼 것밖에 없다고 자평하길 좋아했다. 지난해 1월 출간된 인터뷰집 '이어령, 80년 생각'에서 고인은 "나는 강연할 때 '갓길 장관이오' 하고 소개한다"며 "겸손이 아니라, 개인적인 창조보다는 그것이 사회성을 얻고 역사성을 얻었을 때 티끌만 한 것이라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창조의 힘'을 믿었던 고인은 '온리원' 철학을 주장했다. 고인은 자신의 말 모음집 '우물을 파는 사람'(2012)에서 "넘버원이 되지 말고 온리원이 돼라. 넘버원이 되기 위해서는 수천, 수만의 사람이 피를 흘려야 되지만 온리원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생명과 존재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남이 못 하는 자기 일을 해나가면 된다"고 밝혔다.
고인은 수많은 직함을 갖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을 '두레박의 갈증'으로 설명하곤 했다. 이와 관련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고인은 "올라가면 끝나는 거니까 정상에 오를 만하면 의도적으로 갈증을 남겨두고 길을 떠난다"며 "이것저것을 하지 않았다면 재미없어서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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