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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과 잘못된 역사신화

입력
2022.02.2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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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체코 수도 프라하의 웬세스라스 광장에서 23일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체코 수도 프라하의 웬세스라스 광장에서 23일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푸틴은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날짜는 2가 여섯 번 겹치는 2022년 2월 22일이다. 이날은 8년 전 친러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된 날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극우 정치인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는 3개월 전 정확히 이번 침공 날짜와 시간까지 맞혔다. 의회연설에서 군사작전이 22일 새벽 4시에 개시된다고 말한 것인데 그의 입만 보면 미 중앙정보국(CIA) 정보가 필요 없을 정도다. 공교롭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조지아를 공격한 날은 2008년 8월 8일이다.

□ 일각에선 숫자와의 관계에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나 푸틴이 수비학(數秘學)에 빠져 택일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푸틴이 정말 빠져 버린 곳은 잘못된 역사 신화란 지적은 공통된다. 일례로 2016년 모스크바 크렘린궁 옆 광장에는 17m 높이의 블라디미르 대공 동상이 세워졌다. 그리스정교를 국교로 세우고 슬라브족을 통합해 키예프 공국을 다스린 지배자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통치한 그는 모스크바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하지만 푸틴은 크림반도 합병 이후 고양된 민족주의에 편승해 동상을 세우고, 키예프 공국을 러시아 역사에 편입시켰다.

□ 푸틴은 더 나아가 역사 전문가를 자처하며 작년에 논문까지 발표했다. 그에게 ‘러시아인’이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전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러시아를 포함하는 의미다. 구소련의 붕괴는 지정학의 결과이지 공산당 독재로부터의 해방은 아니다. 무엇보다 푸틴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동족이며, 우크라이나란 국가는 ‘픽션’이라고 규정했다. 역사에 수정주의적 관점을 도입해 처음부터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복속을 정당화하려 한 것이다.

□ 우크라이나 사태의 배후로 이처럼 왜곡된 푸틴의 역사인식이 지목되는 건 무리가 아니다. 두 나라의 근본적 차이는 정체성, 역사 신화에서 시작한다. 푸틴의 논리를 따라가면 역사 경험이 다른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인 조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안드레이 조린 옥스퍼드대 교수는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기고에서, 동족이란 게 맥락 없어 보이나 동족 간 불화만큼 화해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푸틴에게 경고했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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