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거래 방지 '키워드 모니터링' 허점 악용
당근마켓·중고나라 동일수법 사기 피해 속출
서울 송파구에 사는 A씨는 지난달 22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정가 50만 원대의 육아용품을 35만 원에 판다는 글을 봤다. 자신의 이름을 김○○라고 밝힌 판매자는 가격이 워낙 저렴해 구매 요청 채팅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선입금을 보내주면 예약자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마음이 급해진 A씨는 판매자가 알려준 계좌번호로 20만 원을 입금하려다가 개설되지 않은 계좌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판매자는 "아, 한 글자 틀렸네요"라며 계좌번호 맨 앞자리를 정정했다. 그제서야 입금이 됐지만 판매자와 더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국내 대형 중고거래 플랫폼들이 사기 거래 방지를 위해 가동하고 있는 '키워드 모니터링'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든 사기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의심 계좌번호 단속을 피하려 구매 희망자에게 한 글자만 다른 계좌번호를 제시했다가 바로잡은 뒤 돈만 받고 연락을 끊는 수법이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당근마켓에선 김○○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 신고가 각지에서 접수되고 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경기 파주경찰서 관계자는 "같은 계좌, 같은 수법이 동원된 유사 사건을 계속 이관받고 있으며 현재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인 중고나라에서도 안○○라는 이름의 판매자가 동일한 수법으로 사기를 쳤다는 피해 신고가 잇따라 충남 당진경찰서가 전담 수사하고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 "마땅한 조치 수단 없어"
중고거래 플랫폼들이 사기 거래를 막고자 마련했다가 사기꾼에게 되레 역이용당하고 있는 '키워드 모니터링' 시스템은 사기 피해가 접수된 계좌번호, 거래금지 품목 등을 판매자가 채팅에서 언급할 경우 구매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발송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일부러 틀린 계좌번호를 채팅에서 언급했다가 한 글자를 정정하는 수법은 같은 계좌로 여러 번 사기를 치면서도 시스템의 감시망엔 포착되지 않는 '묘수'인 셈이다.
추석 연휴 무렵 당근마켓에서 중고 TV를 사려던 B씨도 이런 수법에 당했다. B씨는 "위치 기반 플랫폼이라고 해서 믿고 사용해왔는데 사기를 당한 후 살펴보니 (김○○가) 똑같은 상품을 서초동에 올렸다가 2시간 뒤엔 포항, 또 1시간 뒤엔 다른 지역에 올리고 있었다"며 "각각은 소액이더라도 전국에서 피해자가 나온 만큼 전체 피해 규모는 클 것"이라고 말했다. A씨 또한 자신이 사려던 제품을 미끼 삼은 판매글이 8시간에 걸쳐 지역을 바꿔가며 계속 올라오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 그는 "당근마켓에 신고해 해당 계정이 자정쯤 정지된 것을 확인했지만 그동안 추가 피해자가 속출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기 피해자가 적지 않다 보니 이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네이버 카페도 개설됐다. 피해자들은 범인이 이용한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를 해당 은행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한 피해자는 "명백하게 범죄에 동원된 계좌이니 지급정지를 하든가, 도용된 계좌라면 실제 예금주에게 연락하든가 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은행에선 모두 불가능하다고만 답했다"고 말했다.
플랫폼 측은 사전 예방이 쉽지 않았던 범행이라는 입장이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범죄에 연루된 사실이 있는 계좌번호 등 문제적 메시지가 감지되면 주의 안내 및 경고 메시지가 자동 전송되도록 시스템이 설계돼 있지만, (감지가 되더라도) 즉각 차단 조치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고나라 관계자는 "이런 수법이라면 즉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 사기 거래 피해 건수는 급증하는 추세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고 거래를 포함한 온라인 거래 사기 발생 건수는 2016년 7만6,228건에서 2020년 12만3,168건으로 급증했다. 반면 검거율은 같은 기간 90.5%에서 76.1%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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