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결혼 포함된 심즈4 '마이웨딩스토리'
러시아서 출시 취소했다 시민 반발로 번복해
"게임은 현실의 한계 넘는 피난처 역할"
유명 가상현실 게임 '심즈(The Sims)' 시리즈가 러시아에서 발매를 포기했다가 다시 판매하기로 결정을 철회했다. 게임에 포함된 동성 결혼 기능이 러시아의 '반(反)동성애법'을 위반할 우려 때문이었지만, 러시아 시민들의 적극적인 요구가 결정을 번복하게 만들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게임 제작사 일렉트로닉 아츠(EA)는 심즈4 확장팩 '마이웨딩스토리'를 러시아에서 출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게임 속 캐릭터들이 동성 결혼을 할 수 있는 기능이 포함됐는데 이 설정이 러시아의 '동성 결혼 금지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EA 측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법에 의해 스토리가 바뀔 수 있는 지역에선 게임을 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동성애에 관한 한 가장 부정적인 국가에 속한다. 2013년 동성애를 포함한 콘텐츠를 만 18세 미만에게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도입했고, 2020년 개헌안엔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조항을 넣어 동성 결혼을 원천 봉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같은 해 연설에서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동성 부부는 존재할 수 없다"며 보수적인 가치관을 못 박기도 했다.
게임 출시 취소 소식이 전해지자 러시아 시민들은 EA사가 러시아 고객들을 차별한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동성애를 사실상 금지하는 국가에서 심즈 같은 게임이 '현실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성 소수자라고 밝힌 다리아 작센은 "심즈는 LGBTQ+(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 등의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게임 중 하나"라며 "모두가 현실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게임을 하고 싶어 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말했다. 이미 해당 게임은 러시아에서 18세 이상을 대상으로만 판매되고 있어 법적 문제가 없을 것이란 지적도 제기됐다.
러시아 시민들은 나아가 게임 발매를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 청원을 시작한 마르크 라데츠는 "심즈 게임 속 (동성애) 커플은 러시아에서 동성애자들이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을 할 때 힘이 될 것"이라며 "발매 취소는 오히려 동성애 혐오적인 규칙을 수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적었다. 관련 청원은 23일 기준 1만1,000여 개에 달하는 서명을 받았다.
반발이 계속되자 EA사는 계획을 변경해 23일 러시아에서도 게임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EA사는 "우리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우려 등을 모두 듣고 있었다"며 "동성애 혐오에 맞서 가치를 수호하는 건 우리에게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이번 사건은 게임 회사를 상대로 한 시민들의 승리"며 "러시아의 신세대가 푸틴이 세운 법으로 대표될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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