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현 개인전' 3월 13일까지 국제갤러리
대표작 '접합' 연작부터 60여년 화업 한눈에
다채색 접합, '이후 접합' 신구작 39점 선보여
일생을 마대 앞에서 물감과 씨름했다.
한국 단색화의 선구자 하종현(87)은 하얀 캔버스가 아닌 쌀을 담던 누렇고 거친 마대 위에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화가다. 곤궁한 형편 탓에 외제 캔버스는 엄두도 못 냈던 젊은 시절의 그는 남대문시장에서 미군의 구호 물자를 담았던 마대를 겨우 손에 넣었다. 마포의 성긴 올 사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뒷면에 물감을 발라본 게 뾰족수였다. 마대 뒤에 물감을 두껍게 칠해 앞면으로 밀어 넣는 배압법의 시작이다. 마대를 캔버스로 삼는 것만큼이나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하종현만의 독창적 기법이 됐다.
그의 60여 년 화업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시가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1974년부터 선보인 그의 대표작 '접합' 시리즈부터 색을 입힌 다채색의 접합, 배압법을 새롭게 응용한 근작 '이후 접합'까지 신·구작 39점이 걸렸다.
"한자리에 가만히 있기 싫었다"는 노화가의 실험과 도전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초기 '접합'이 마대와 철조망 등 주변의 재료를 가져다 기왓장, 백자를 연상케하는 한국적 색을 입힌 게 주였다면 1990년대 이후부턴 '색'이 쓰인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청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다채색의 '접합 21-38'이 대표적이다. 검정 물감으로 표면을 칠한 마포의 뒷면에 흰색 물감을 발라 앞으로 밀어 넣는 기존 접합의 방식은 고수하되 색에 대한 동시대적 고민을 담아낸 현대적 작품이다. 줄자로 바탕에 줄을 그은 후 그 위에 흰색으로 칠하고, 다시 청색 물감을 얹혀 완성했다.
그의 작업은 올 사이로 밀리고 삐져나온 물감 본연의 성질을 극대화하면서 입체성을 더하는 방향으로도 뻗어나갔다. 2009~2013년 실험한 후 최근 다시 시작한 '이후 접합'은 분명 평면 위 작품이지만 조각의 느낌이 강해졌다. 기존 배압법을 응용한 작업 방식으로 변화를 도모하면서다. 우선 나무 합판을 얇은 직선 형태로 자른 후 일일이 캔버스 천으로 감싼다. 화폭에 한 조각을 놓은 후 가장자리에 물감을 짜넣는다. 그 옆에 나란히 또 다른 조각을 붙이는데 이때 물감이 눌리면서 나무조각 사이로 스며나온다. 때에 따라 그 위로 물감을 덧칠하거나 스크래치를 내서 입체적 효과를 더한다.
사람이 손으로 하는 일이다보니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조각의 높낮이가 제각각이다. 인위적으로 예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재료 본래의 표정이 나오는 게 '접합'의 묘미다. "마대의 형태에 따라 (물감이) 이상한 형태, 꼬부라진 형태로 나오고, 좀 굵은 게 있으면 작은 것도 있고, 가는 것도 있고 여러 형태가 나오는데 야, 이건 인간이다... 사람의 얼굴도 똑같은 얼굴이 없잖아요. 자기가 자기의 얼굴을 갖고 나오는 거예요.(하종현)"
평생 자신만의 회화언어를 구축해온 그는 오는 4월, 3년 만에 열리는 세계 최대 미술 축제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회고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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