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국내 정유업계 석유수출 50% 급증
주요국 탈탄소로 정유시설 잇따라 폐쇄 영향
지난해 국내 정유사들이 호주로 수출한 석유제품 물량이 1년 전보다 50%나 급증했다. 호주에서 정유공장이 잇따라 문을 닫은 영향이다. 에너지 수급에 심각한 불균형이 생기자 호주 정부는 에너지 대란을 막기 위해 한국산 석유제품 수입량을 대폭 늘렸다.
대형 정제공장 잇따라 폐쇄…발칵 뒤집힌 호주
21일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정유사들이 호주로 수출한 석유제품은 4,250만 배럴로 1년 전보다 무려 49% 증가했다. 물량 기준으로는 중국(9,003만 배럴), 일본(5,280만 배럴), 싱가포르(5,060만 배럴), 미국(4,310만 배럴)에 이어 5위지만 수출 증가율로 따지면 압도적 1위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일부 석유제품에 세금을 부과해 국내 정유사의 수출물량이 28.4% 급감했는데, 이를 호주가 메워준 셈이다.
호주가 한국산 석유제품 수입 물량을 대거 늘린 건 자국 내 대형 정제시설이 잇따라 가동을 멈춘 여파다. 영국 석유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미국 최대 석유 기업 엑손모빌은 각각 호주에서 하루 14만4,685배럴과 8만6,000배럴의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정유공장을 운영했는데, 2020년과 지난해 차례로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규모가 가장 큰 BP의 정유공장이 지난해 중반 먼저 문을 닫았고, 조만간 엑손모빌의 정제공장도 가동을 완전히 멈출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자국 석유기업 AMPOL도 지난해 9월 공장 폐쇄를 검토 중이라고 발표하자 호주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이 3곳은 호주 정제시설의 74%를 차지한다. 호주는 이전에도 필요한 연료의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했는데, 정유공장들이 문을 닫았거나 닫을 예정이라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됐다.
호주 정부는 부랴부랴 정유공장 지원금을 올해 예산안에 반영했지만 미봉책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내 한 정유사 임원은 "정유공장을 운영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기술력이 요구된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철수를 예고한 마당에 호주 정부가 다시 붙잡거나 새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석유수요 폭발…정유시설 '에너지 안보' 부상
해외에서 문을 닫는 정유공장은 갈수록 늘고 있다. 산업계에 탄소중립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석유산업에 대한 투자가 급감한 영향이 가장 크다. 석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 걸로 내다본 글로벌 석유기업들이 노후시설에 재투자하는 대신 아예 공장을 멈추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총 13곳의 정유공장이 문을 닫거나 폐쇄 방침을 밝혔다. 하루 195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정제시설이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석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향해 치솟았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에도 2050년까지 석유 수요가 견조할 거란 전망이 잇따르면서 석유 정제산업이 에너지 안보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경유 등을 만드는데, 내수로 공급하고 남는 물량을 수출한다. 정제시설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그만큼 에너지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세계 톱5 안에 드는 정제시설을 3곳이나 보유한 국내 정유업계가 반사이익을 누릴 거란 기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베트남의 최대 정제시설인 응희손 공장이 재정 문제로 원유 도입에 차질을 빚으면서 휘발유 공급이 확 줄었다"며 "베트남과 가까운 국내 정유사들이 수혜를 볼 거란 기대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탄소중립 정책을 밀어붙인다며 정제시설을 줄이면 에너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만큼 우리도 탄소중립 연착륙을 위한 정책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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