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는 만 50세 이상만 출전할 수 있는 나이 제한이 있다. 한살 한살 나이가 들 수록 유연성과 근육량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니어들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나이’는 곧 챔피언스 투어 최강의 무기다. 만 50세로 챔피언스 투어 출전 자격을 갖추면 곧바로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이유다.
그래서 시니어 프로골프 세계에서만큼은 60대 선수가 50대를 이기기는 어렵다고 여겨졌다. 적어도 독일의 베른하르트 랑거(64)가 챔피언스 투어에 출전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랑거는 21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 골프 클럽(파72)에서 열린 PGA투어 챔피언스 처브 클래식(총상금 160만달러)에서 최종 합계 16언더파 200타를 기록해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첫날 자신의 나이만큼 타수를 치는 '에이지 슛'을 기록해 선두로 나섰던 랑거는 끝까지 1위 자리를 지켜내며 PGA투어 챔피언스 통산 43승과 함께 자신이 작성한 최고령 우승 기록(64세 1개월 27일)도 '64세 5개월 23일'로 갈아치웠다.
랑거는 ’시니어 골프 황제’ ‘시니어 투어의 지배자’로 불린다. 2007년 챔피언스 투어 데뷔 이후 올해까지 햇수로 16년 동안 매년 우승을 거른 적이 없다. 챔피언스 투어 메이저도 최다승(11승) 기록을 갖고 있다. 2008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11번이나 상금왕에 올랐고, 올해의 선수를 8차례나 차지했다. 만 60세였던 2017년엔 무려 7승을 거뒀다.
랑거는 챔피언스 투어 통산 상금도 유일하게 3,000만달러(3,200여만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헤일 어윈이 갖고 있는 시니어 투어 최다승(45승)까지 불과 2승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는 PGA투어에선 3승에 머물렀지만, 주 무대인 유럽투어에서는 42승(마스터스 2승 포함)을 올렸다. 전 세계 투어에서 지금까지 119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64세의 나이지만 띠동갑 이상 차이가 나는 50대 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랑거의 비결은 무엇일까. 철저한 자기 관리다. 열아홉 나이에 병역 복무 중 척추 골절과 디스크로 고생한 이후 랑거는 50년 가까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피트니스 운동을 하고 있다. 근력과 유연성 유지를 위해서다.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플랭크 운동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운동 중 하나다. 키가 174㎝인 랑거는 골프 경력 내내 체중 72㎏을 유지하고 있다. 랑거는 “여전히 비거리는 20~30대 투어 선수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몸에 무리가 덜 가는 부드러운 스윙도 그의 강점이다. 허리나 어깨, 엉덩이 등의 관절을 많이 쓰지 않고 몸통 전체를 간결하게 회전하는 방식이다. 어드레스했을 때 클럽 헤드 페이스 각도를 백스윙에서 다운스윙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스퀘어 스윙’으로 몸의 동작을 줄여주는 게 특징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스윙을 교정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무리 없는 스윙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라고 한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변화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랑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퍼팅이다. 왼손을 명치에 대고 오른손은 샤프트 중간 부분 그립을 쥐는, 이른바 빗자루질 퍼팅을 한다. 평생을 퍼팅 입스(yips)와 싸워왔다는 말을 들을 만큼 혹독한 자기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전매특허다. 아홉 살 때 골프에 입문한 랑거는 그동안 왼손을 내려잡는 역그립, 일반 그립, 집게그립 등 퍼팅 방식만 50여 차례 바꿨다. 2016년부터 몸에 그립의 끝을 대는 ‘앵커링’ 퍼팅이 금지되면서 빗자루질 퍼팅을 할수 없게 되자 많은 이들이 랑거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왼손 엄지를 명치에서 살짝 떼는 우회로를 찾아 여전히 챔피언스 투어를 호령하고 있다. 랑거는 지난해 10월 챔피언스 투어 통산 42승째를 달성한 후 “(나의 우승이) 50대와 60대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아직 뛰어난 수준의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물론 신체적인 컨디션을 잘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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