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회고록 읽어 보니
'광화문광장에 내보내 심판 받게 할 것' 등
검찰의 비인간적 수사방식·별건수사 비판
"세모를 네모 만드려는 검사들 시도 늘 있을 것"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영수 특검'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에서 검사 수십 명과 마주했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회고록을 통해 검찰과 특검의 조사 과정을 깨알처럼 상세히 기재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검찰의 불합리한 수사관행과 일부 검사의 비인간적인 수사 방식에 대해 자세히 적었다.
안 전 수석은 검찰 조사 과정 등을 기록한 이유에 대해 "내 명예나 유불리에 관계 없이 진실만을 남기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는 수감 중 언론 보도로 자세히 알려진 '안종범 수첩'처럼 이번에 출간한 회고록을 '나의 분신'이라고 강조했다.
생각날 때 꺼내 먹는 냉장고 음식처럼 불러
안 전 수석이 최근 출간한 '안종법 수첩-박근혜 정부의 비망록'에는 2016년 11월 첫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검사 수십 명을 겪은 경험과 그때 느꼈던 감정이 담겼다. 그는 직권남용과 뇌물 등 혐의로 구속돼 4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9월 출소했다. 그는 검찰과 특검에 150회 정도 출석했고, 참고인 조사도 수없이 받았다.
그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많은 유형의 검사를 접했다고 언급하면서 '검사들은 냉장고 음식이 생각나면 꺼내 먹는 정도로 구속 수용자를 소환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박영수 특검 당시 자신을 서로 조사하려던 검사들의 경쟁적인 모습도 묘사했다. 그는 '매일 이방 저방 불려다녔는데, 한 검사한테 조사받는 중에 다른 검사도 찾는다고 연락오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썼다. 한 검사가 재판에서 자신이 뇌물 조사를 회피하려고 다른 검사 조사만 받는다고 주장한 일화를 '압권'으로 꼽았다. 안 전 수석은 이를 두고 '자기 조사가 가장 시급한 검사들의 인식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허리 통증으로 척추 주사를 맞은 날에도 밤샘조사를 받고, 급성 장염으로 탈진한 날도 누워서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첫날 만난 검사가 가장 충격을 안긴 압박성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검사는 '초면이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협조 안 하면 시련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검사가 언급한 협조는 삼성 합병 과정에서의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 관련 진술이었다.
안 전 수석은 '기억이 희미하더라도 대통령에게 삼성 합병 문제 걱정이라는 정도 언급은 들었다'고 진술하라는 압박을 받았고, 기대한 답이 아니면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라' '당신을 광화문광장에 내보내 심판을 받게 해야겠다'는 고함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몰랐던 '최순실·삼성 합병 관련 진술'을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고 압박한 것과 청와대 재직 2년 5개월(2014년 6월~2016년 10월) 동안 수첩에 쓴 자신의 악필을 보며 기억을 되살리라고 압박받은 게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고 강조했다.
몸서리쳐지는 별건수사... 검사도 '안타깝다'더라
안 전 수석은 회고록에서 "몸서리나게 겪었다"며 '별건 수사' 문제를 별도로 할애해 적었다. 별건 수사는 검사가 수사 본류의 범죄구성요건 완성을 위해 피의자 약점을 파고들어 원하는 진술을 받아내는 '타건(他件) 압박 수사'다. 안 전 수석은 검사가 '가족 관련 조사 내용이 있다'며 조카 취업 문제를 거론했으며, 가족 비위를 들추겠다고 협박했다고도 했다.
그는 결국 대통령 비선진료 의혹 당사자인 김영재·박채윤 부부의 뇌물 사건에 걸려든 과정을 풀어냈다. 김씨 부부는 대통령을 이용해 중동 의료진출과 관련한 무리한 요구를 했고, 자신이 막았지만 결국 박씨가 호의로 준 선물을 뇌물로 감당할 처지가 됐다고 했다. 검사가 '아내의 수수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내를 구속시키겠다'고 해서, 자신이 몰랐던 박씨의 금품 공여를 알았다고 진술하려 갈등했다고도 밝혔다. '특검의 모 간부'는 자신의 뇌물 사건을 두고 '별건 수사라 막으려 했지만 안 됐다.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안 전 수석은 그러면서 '별건 수사는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회고록을 집필한 이유도 집단논리에서 벗어나기 힘든 검찰의 문제를 짚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는 징역 4년을 산 만큼 검찰 개혁을 주장할 자격은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겪어 보니 세모(진실)를 네모로 만드려는 검사들의 시도는 늘 있을 듯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품수수 등 자신의 잘못과 관련해선 '솔직히 용서를 구하는 마음도 있다'고 적었다.
알아서 입 열게 한 뛰어난 검사도 있어
안 전 수석은 강압적이지 않고 직업의식에 성심을 다한 검사들도 언급했다. 피의자나 참고인을 안정시킨 뒤 충분히 대화하고 나중에 조서를 입력하되 대화 사항을 빠짐없이 기록하던 검사들을 '알아서 입을 열게 한 뛰어난 검사'로 서술했다.
반면, 재판에서 거짓을 일삼은 피고인으로 나쁜 인상을 주려고 자료를 숨긴 채 진술을 받는 '덫놓기' 조사하는 검사들을 '입 닫게 하는 검사'라고 칭했다.
책에선 검찰과 특검 조사로 극단적 선택을 떠올릴 때 구치소 관계자가 바로잡아 준 일화도 소개됐다. 지급된 특정 물품을 쳐다보자 교도관이 자기 속내를 알고 '불가능하니 시도를 말라'며 여러 불발 사례를 농담 삼아 말해주며 다독여 줬다고 했다. 그는 교도관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수감 중에 교정행정이 법무부로부터 독립해야 할 이유를 담은 교정행정 개혁 방안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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