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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에게 "입 모양만 보고 뭐라는지 맞춰봐" 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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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에게 "입 모양만 보고 뭐라는지 맞춰봐" 무례

입력
2022.02.26 11: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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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인공와우 통해 ‘듣고 말하는’ 청각장애인들
“말 잘하면서 청각 장애?” 흔하디흔한 오해와 차별
장비 써도 80~85% 들려… “난청인 지원정책 필요”

청각장애인 코다맘(닉네임)씨가 사용하는 보청기. 그는 보청기를 통해 듣고 구화(말하기)를 한다. 구화는 그에게 가장 익숙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하지만 소리를 듣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화보다는 문자가 편하고, 스물 넘어서 배우기 시작한 수어야말로 '가장 마음 편한 언어'다. 코다맘 제공

청각장애인 코다맘(닉네임)씨가 사용하는 보청기. 그는 보청기를 통해 듣고 구화(말하기)를 한다. 구화는 그에게 가장 익숙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하지만 소리를 듣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화보다는 문자가 편하고, 스물 넘어서 배우기 시작한 수어야말로 '가장 마음 편한 언어'다. 코다맘 제공

청각장애인 박현진(23)씨는 '말하고 듣는다'. 오른쪽 귀엔 보청기, 왼쪽 귀쪽에는 인공와우(달팽이관)를 쓴다.

다만 매번 잘 들리는 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놓칠 때도 있다. 그는 "(청각 보조 장치를 꼈는데도) 왜 못 듣는 척하냐, 사실 들리는데 사람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때도 있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는 입 모양으로 욕설을 하거나, 소리를 내고서는 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등 차별 행위를 하던 또래도 일부 있었다.

보청기를 쓰는 김인선(37)씨 또한 “발음 훈련이 덜 됐던 어린 시절에는 ‘혀가 짧다’고 놀려대거나, ‘진짜 못 듣냐’며 등 뒤에서 말하고는 맞춰보라는 둥, 입 모양만 보고 맞춰보라는 둥 실험 쥐처럼 대한 친구들도 있었다”며 “철없던 시절 장난이었겠지만 당사자에겐 평생 남는 상처”라고 말했다.


모델과 배우를 꿈꾸는 박현진씨는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주제로 다양한 영상을 만들고 있다. 영상에서 자신이 당했던 차별을 설명하는 박씨의 모습. JIN TV 캡처

모델과 배우를 꿈꾸는 박현진씨는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주제로 다양한 영상을 만들고 있다. 영상에서 자신이 당했던 차별을 설명하는 박씨의 모습. JIN TV 캡처

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보통 농인(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통해 소리를 듣고 입 모양을 읽으며 대화하는 이들이 더 많다. 수어를 제1언어로 쓰지 않는 이들을 ‘난청인’, 또는 구화를 주로 쓴다는 점에서 ‘구화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20년 12월 기준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국내 청각장애인 수는 39만5,789명.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의 74%가 보청기를 쓰고, 4.2%가 인공와우 수술을 했다고 답했다. 인공와우란 외부 소리를 전기신호로 변환, 달팽이관에 있는 청신경 세포를 자극해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말하고 듣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다보니,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해시켜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직장인 황민아(33)씨는 “저 같은 난청인이 구화를 쓰면, ‘그건 청각장애가 아니네’ ‘너는 말 잘하잖아’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오면서 설명해야 될 게 산더미처럼 늘어난다”고 난감해했다.


박현진씨가 왼쪽 귀 뒤 머리에 착용하는 부착형 인공와우 칸소(KANSO). 세로 3.5cm, 가로 3cm 정도 크기다. 기기에서 나오는 불빛은 정상 작동 여부, 배터리 잔량 등의 정보를 표시해 준다. 박현진씨 제공

박현진씨가 왼쪽 귀 뒤 머리에 착용하는 부착형 인공와우 칸소(KANSO). 세로 3.5cm, 가로 3cm 정도 크기다. 기기에서 나오는 불빛은 정상 작동 여부, 배터리 잔량 등의 정보를 표시해 준다. 박현진씨 제공

이준행(27)씨는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무렵, 보청기와 인공와우 배터리가 다 닳은 일이 있었다"며 "기차 안에서 승무원이 제게 말을 걸기에 '보청기 배터리가 없어 듣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지만, '말을 하는' 저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믿지 못한 채 그저 말을 이어가시더라"고 회상했다. 그는 "내가 직접 말을 해도 상대가 안 믿는 상황이라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힘이 쭉 빠졌다"고 토로했다.

보조 장치를 당사자 허락 없이 만지려 했다거나, 인공와우에서 나오는 불빛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고 시비를 걸었다는 등의 경험담도 온라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인선씨는 "인공와우나 보청기는 그 사람의 두 번째 귀나 다름없다. 함부로 만지는 건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사람의 몸을 허락 없이 만지거나, 쓰고 있는 안경을 건드리면 안 되는 게 상식인 것처럼 말이다. 인공와우는 내외부 장치(내부 임플란트·외부 어음처리기) 기계값만 2,000만 원이 넘는 고가장치다.


지난해 큰 화제를 모았던 여성 댄서들의 경연 프로그램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한 YGX 크루의 비걸(B-girl) 예리는 방송에서 청각장애가 있어서 보청기를 낀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크루 멤버 여진은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예리가 입 모양을 볼 수 없어, (제작진) 공지를 듣고 마스크를 빼서 저희가 한 번 더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 캡처

지난해 큰 화제를 모았던 여성 댄서들의 경연 프로그램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한 YGX 크루의 비걸(B-girl) 예리는 방송에서 청각장애가 있어서 보청기를 낀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크루 멤버 여진은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예리가 입 모양을 볼 수 없어, (제작진) 공지를 듣고 마스크를 빼서 저희가 한 번 더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 캡처

보조 기기를 쓴다고 해서 단숨에 ‘청인처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준행씨는 "잘 들어도 80~85% 정도고, 놓치거나 못 들을 때도 있다"고 했다. 소리 조절(피팅·맵핑)과 청능훈련 과정을 거쳐 새로 듣는 소리에 익숙해지기까지 짧게는 몇 개월, 길면 1년 넘는 시간이 걸린다. 인공와우 수술 이후 적응을 못하거나, 어지럼증 등 부작용으로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적응한 후에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회의나 모임, 소음이 심한 공공장소, 입 모양을 볼 수 없고 발음이 불분명한 상황에선 듣기 어려워진다. 목소리 음역대나 말투(사투리)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청각장애인과 대화할 때는 가급적 천천히, 또박또박, 조용한 곳에서 입 모양이 보이게 말해야 하는 이유다.

청각장애인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사랑의 달팽이' 조영운 사무총장은 “주변 소음, 잡음은 배제시키고 안내방송이나 말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게 해주는 ‘히어링 루프’를 은행이나 관공서, 대중교통 등 필수 시설만이라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또 난청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잘 들을 수 있게 도와주는 ‘FM 수신기’, 공공행사에서 수어·문자 통역 동시 제공 등이 보편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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