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중국의 제국들과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나 한 번도 중국 제국의 일부가 되지는 않았다. 티베트와 몽골을 비롯해 중앙아시아의 일부 국가들 그리고 오늘날 중국 남서부 지역이 된 국가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 이유가 뭘까? 오랫동안 국제사를 연구해 온 오드 아르네 베스타 예일대 사학과 교수는 2017년 하버드대에서 진행한 강연을 정리한 저서 ‘제국과 의로운 민족’에서 이렇게 묻는다.
저자는 그 이유를 한반도인이 유교를 중심으로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한편, 제국의 작동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반도를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하나로 딱 잘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조선 건국 이후로 논의를 좁힐 경우, 국가를 지배하는 ‘엘리트(지배계층) 차원의 의식’이 존재했으며 그것은 유교적 세계관이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르면 중국과 한반도의 엘리트들은 유교와 한문을 중심으로 문화적 기반을 공유했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 제국은 한반도의 문화적 독립성과 자치를 인정했다.
중국 제국에게 한반도는 언제나 타자였지만 적대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제국의 관리들에게 한반도는 천자의 영향력 아래 있으면서도 분명히 제국의 테두리 바깥에 존재하는 지역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관계를 중국어로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가장 가까운 이웃’ 또는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는 봉신국’일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한반도는 자신(중국)들과 매우 친밀한 타자였다. 한반도인은 중화의 일부였지 오랑캐가 아니었다.”
이러한 관계를 상징하는 표현이 ‘제국과 의로운 민족’이다. 저자는 한반도인을 ‘의로운 민족’으로 규정하고, 이때의 ‘의로움(Righteous)’을 유교적 사고방식에서의 의로움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도덕적 적합성, 충성심, 원리에 대한 충실함을 뜻한다. 한반도인이 다른 민족이나 정치체에 비해서 특별히 의롭다는 뜻이 아니라 유교적 원리에 충실하다는 의미다. 조선의 엘리트들은 건국하면서부터 성리학을 조선 사회 전반에 적용하려고 애썼고,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중국’의 기준에 맞춰 행동했다. 조선이 명나라와의 관계를 ‘사대(事大)’라고 표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큰 나라를 섬긴다’는 표현이다.
동시에 사대는 조선이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패였다. 조선과 중국 제국들이 공유하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큰 나라를 따르는 임금은 자신의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 조선이 명나라를 따른다면 다른 외적뿐만 아니라 명나라 역시 조선에 간섭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명나라로서도 북쪽과 서쪽에서 전쟁을 벌이던 상황에서 사대를 주장하는 신흥국 조선과 대결할 여력이 없었다. 저자는 “사대는 조선 정권이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중국과 친밀한, 독특한 국가임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면서 “명 황제는 사대를 주장하는 조선의 찬사를 받아들였으며 조선의 국내 정치에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논의를 현대까지 확장한다. 청나라가 서구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과 냉전을 거치면서 한반도와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분석한다. 한반도인에게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다뤄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고 지적한다. 유교를 바탕으로 한 사대를 현대에 복원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남한과 북한의 갈등은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도와야 해소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동아시아 평화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도록 중국을 이끌기 위해서는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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