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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2만원? 닭 키우는 인건비 10년 넘게 마리당 180원" 육계농가의 한탄

입력
2022.02.17 04:30
수정
2022.02.17 07:50
9면
0 0

[치킨 공화국의 속살]
30일 넘게 키우고 납품… 계사 청소에 2~3주
사료비 약값 오르지만 계열회사는 지원 줄여
계열회사 상대평가 도입… 상황 더 안 좋아져
치킨 소비 늘었지만 유통 끝단 농가는 "글쎄"

지난달 29일 찾은 강원 춘천시의 한 육계농가 모습. 농장주인 김모(39)씨가 계사를 걸어가고 있다. 춘천=조소진 기자

지난달 29일 찾은 강원 춘천시의 한 육계농가 모습. 농장주인 김모(39)씨가 계사를 걸어가고 있다. 춘천=조소진 기자

“일주일 있으면 출하될 닭들이라 냄새가 많이 날 텐데 괜찮겠어요?”

검은색 방역복에 흰색 장화, 방역용 마스크를 착용하던 그가 돌아서서 재차 물었다. “닭이 울어도 놀라지 마세요.”

지난달 29일 찾은 강원도 춘천의 한 육계농장 주인 김모(39)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굳게 닫힌 계사 철문을 열고 기자를 안내했다. 뜨겁고 습한 공기가 밀려들면서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암모니아 향이 나는 계분과 왕겨 냄새가 뒤엉켜 코를 찌르기도 했다. 안경에 잔득 낀 습기가 걷히자 수만 마리의 흰색 닭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중에는 노란 깃털이 덜 빠져 병아리 티를 못 벗은 어린 닭들도 제법 있었다.

강원 춘천시의 한 육계농장에서 크고 있는 23일령 된 닭의 모습. 춘천=조소진 기자

강원 춘천시의 한 육계농장에서 크고 있는 23일령 된 닭의 모습. 춘천=조소진 기자


닭 키우는 30여일 동안 농장 근처에서 숙식

김씨는 이날 450평 되는 농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닭 상태를 일일이 확인했다. 닭 한 마리를 집어 들고 귀에 가져다 대기도 했다. “요새 날이 추워서 그런지 ‘켁켁’ 하고 기침하는 닭들이 많네요.” 그는 매년 6차례 닭을 키우기 때문에 1년을 두 달 단위로 쪼개 생활한다. 주문을 받아 닭을 키워 납품하기까지 보통 33~36일이 걸리고, 닭이 납품되면 계사 깔짚 위에 쌓인 계분(鷄糞)을 치우고 계사 내부를 청소하는데 2~3주가 필요하다.

강원 춘천시에서 육계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39)씨의 방 한켠에는 계사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폐쇄회로(CC) TV가 있었다. 춘천=조소진 기자

강원 춘천시에서 육계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39)씨의 방 한켠에는 계사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폐쇄회로(CC) TV가 있었다. 춘천=조소진 기자

김씨는 농장에서 서른 걸음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지낸다. 닭을 키우려면 곁에서 24시간 대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6, 7번 정도 계사를 구석구석 살피며 닭 상태를 확인해요. 컨테이너 안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로도 상태를 계속 지켜봅니다. 닭은 무척 예민한 동물이라 온도(28~29도)와 습도(60~70%), 사료 양과 환기까지 모두 신경 써야 해요.”

“10년 넘게 인건비가 마리당 180원”

육계농가는 하림과 마니커 등 육계계열회사와 계약을 맺는다. 사육계약서와 정산서 모습. 조소진 기자

육계농가는 하림과 마니커 등 육계계열회사와 계약을 맺는다. 사육계약서와 정산서 모습. 조소진 기자

이곳에서 한 번에 들여와 키우는 닭은 3만 마리 정도다. 그렇다면 김씨가 1년 내내 닭을 키워 납품하는 과정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얼마나 될까. 농가는 보통 하림과 마니커 등 '인티그레이션'(인티 회사 또는 계열회사)으로 불리는 닭 공급사와 계약을 맺는다. 계열회사가 정해주는 대로 병아리를 공급받아 33일 동안 키워 납품하고, 그 대가로 위탁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납품 계약을 한 계열회사에서 김씨가 받는 기본 사육비는 닭 1㎏당 120원이다. 출하되는 닭의 무게가 보통 1.5㎏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 마리당 180원이 농가의 최소 수입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 시세보너스와 사료보너스 등 인센티브를 받게 되면 수입은 더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가 보여준 농장사육정산서에는 약품비, 깔짚비, 상차비, 연료비 등 각종 항목이 적혀 있었다. 결국 이 같은 비용을 제하고 김씨가 두 달 동안 손에 쥐게 되는 금액은 대략 1,600만 원이었다. 1년이면 1억 원 가까이 된다.

“이 숫자만 보면 많이 받는 것 같죠? 그런데 계사 짓느라 빌린 돈 갚느라 절반은 나가요. 여기에 일할 사람까지 두면 추가로 돈이 나가죠.” 김씨 말처럼 농가는 초기에 시설 투자 비용이 많이 든다. 김씨도 이곳 땅을 사서 계사를 짓는 데 9억 원이 들었다. 실제로 이것저것 나가는 비용을 제외하면 김씨 손에 남는 돈은 한 달에 300만원 중후반이었다.

“사료비, 약값 등 각종 비용은 다 오르는데, 인건비만 10년 넘게 120원이에요. 최근에는 사료 보너스도 줄었어요. 계열회사에선 사료를 덜 먹여 키우면 농가에 인센티브를 주는데, 돈을 덜 주려고 인센티브 지급 기준을 확 높인 거죠.”

대한양계협회를 통해 확인한 10년 전 사육 정산서에서도 1㎏당 사육비는 120원이었다. 게다가 계열회사가 도입한 ‘상대평가 제도’로 농가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상대평가는 농가들끼리 사육 성적을 비교해 차등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일부 농가에선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사비를 들여 약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치킨 소비량은 느는데 땀 흘린 대가는?

서울의 한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만들어진 치킨 모습. 한지은 인턴기자

서울의 한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만들어진 치킨 모습. 한지은 인턴기자

코로나19로 배달 주문이 늘어나며 치킨업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한국인의 닭고기 소비량도 매년 늘고 있다. 하지만 농가에서 땀을 흘린 대가는 왜 그대로일까. 김씨는 닭 공급 사슬이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가 유통과정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유통 사슬의 끝단에 있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홍재 대한양계협회 회장은 이와 관련해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닭을 사갈 때 ‘규모의 경제’를 이유로 가격을 매우 낮게 요구한다”며 “계열회사 입장에선 물량을 처리해야 하니 종종 손해를 보면서도 계약하고, 계열회사는 이익을 내기 위해 농가에 지급하는 사육비와 각종 인센티브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9년 차 농장주인 김씨는 요즘 들어 닭을 키우는 일에 뛰어든 걸 후회한다고 했다. “김수영 시인이 1960년대 양계장은 하면 할수록 병아리를 키우는 데 더 힘이 든다는 취지로 ‘양계유감’이란 글을 썼어요. 지금 대한민국은 ‘치킨유감’이 아닐까 싶어요.

춘천=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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