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계의 거장 카르멘 에레라가 향년 106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제3세계 출신, 여성에게 가해진 당시 예술계의 차별에도 꿋꿋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90대에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다.
뉴욕타임스는 에레라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자택에서 12일(현지시간) 숨을 거뒀다고 14일 보도했다. 1915년 쿠바 아바나에서 태어난 에레라는 30대 때만 해도, 요제프 알버스, 장 아르프와 같은 유럽의 추상화 거장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의 유명 갤러리인 살롱 데 레일리테 누벨에 작품이 전시될 만큼 촉망받는 화가였다.
그러나 미국인 남편과 결혼 후 뉴욕에 정착하고 나서는 평단의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에레라는 흑백과 같이 단순한 색 조합을 사용하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선보였는데, 당시 미국 미술계는 잭슨 폴락과 바넷 뉴먼, 마크 로스코 등 감상자를 압도하는 추상표현주의가 대세였기 때문이다. 당시 뉴욕 갤러리들이 여성이면서 쿠바 출신 예술가인 에레라를 차별했던 것도 미술계에서 인정받기 어려웠던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러던 미술계는 2004년 중남미 출신 예술가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뉴욕의 한 갤러리 전시를 계기로 에레라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평론가들은 평생 기하학적 미니멀리즘의 길을 걸은 에레라의 작품 세계가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 전시 이후 에레라는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판매했다. 그의 나이 89세였다. 이전까지는 단 하나의 작품도 팔지 못한 무명 예술가였다. 그때 판매된 작품 중 일부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에 기증됐다.
에레라의 작품은 현재 모마를 비롯해,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워싱턴의 허시혼미술관, 영국 테이트모던 등 세계적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2009년 5만 달러(약 6,000만 원)에 거래됐던 그의 작품은 2014년엔 16만 달러(약 1억9,000만 원)로 뛰었다. 에레라는 생전 인터뷰에서 말년에 얻은 명성에 대해 "버스를 기다리면 언젠가 버스가 온다는 말처럼 결국 시간의 문제"라며 "난 100년 가까이 기다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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