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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으로 다시 쓰는 드라마" 김준홍 페어스퀘어랩 대표

입력
2022.02.16 04:30
수정
2022.02.16 15:3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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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투자로 성공하며 드라마 같은 인생역전
기업의 암호화폐 거래 위한 KDAC와 조각투자 플랫폼 트위그 운영

요즘 20, 30대 MZ세대들에게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는 분야가 조각투자다. 조각투자란 그림이나 음악 등 창작물의 소유권이나 저작권 수익 등을 여러 사람이 가질 수 있도록 주식처럼 쪼개서 사고파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조각투자가 건물, 슈퍼카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며 개미들도 적은 돈을 들여 건물주나 슈퍼카 소유주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이 중에서 단연 화제는 지난해 말 등장한 희귀 슈퍼카에 대한 조각투자다. 조각투자로 나온 상품은 1994년 생산돼 국내에 2대뿐인 페라리 '테스타로사 512TR 후기형' 슈퍼카다. 영화 '마이애미 바이스'에 등장해 인기를 끌었던 페라리 테스타로사 512TR는 워낙 희귀해 해외 경매 사이트에서 31만 달러(약 3억3,000만 원)에 팔려 화제가 됐다.

이 중 한 대의 소유권을 확보한 신생기업(스타트업)이 해당 슈퍼카의 지분 34%(1억1,000만 원)를 1조각당 10만 원을 주고 살 수 있는 조각투자 상품으로 내놓았다. 이를 구입한 사람들은 슈퍼카를 팔거나 각종 행사, 영화 출연 등으로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나눠 갖게 된다.

슈퍼카를 조각투자 상품으로 개발한 주인공이 김준홍(51) 페어스퀘어랩 대표다. 그는 비트코인 투자로 크게 성공하며 블록체인 사업 등을 본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를 서울 신사동 페어스퀘어랩 사무실에서 만나 블록체인의 미래에 대해 들어 봤다.

김준홍 페어스퀘어랩 대표가 '트위그'에서 조각투자 상품으로 내놓은 슈퍼카 페라리 '테스타로사 512TR 후기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김준홍 페어스퀘어랩 대표가 '트위그'에서 조각투자 상품으로 내놓은 슈퍼카 페라리 '테스타로사 512TR 후기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드라마 같은 인생역전

김 대표는 한양대 경영학과 시절 '삼국지' '듄' 등 컴퓨터 모의전략 게임에 빠져 밤을 지새웠다. "게임을 너무 좋아해 취미로 코볼, 포트란, C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했죠."

그런데 취미로 시작한 일이 인생을 바꿔 놓았다. 프로그래밍 덕분에 대학 졸업 후 삼성SDS, LG CNS, SK C&C, 코오롱 정보통신 등 여러 대기업의 시스템통합(SI) 업체에 개발자로 지원해 모두 합격했다. 그중 여러 조건을 감안해 LG CNS를 선택해 2004년까지 7년간 개발자로 일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개발자 대우가 좋지 않았어요. 정부나 해외업체의 소프트웨어 개발 일감을 따내 이를 만들어주는 하청 노동자 취급을 받았죠."

그런 그에게 프랑스의 통신서비스 전문 컨설팅업체 벨텍에서 영입 제안을 했다. 여기서 3년간 일하고 미래에셋의 전략기획실로 옮겨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일하며 금융사업에 눈을 떴다. 그는 각종 신사업 기획이 성공해 미래를 보장받으며 잘나갔지만 미래에셋을 그만두고 나이 마흔에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유럽의 명문 경영전문대학원 스페인 IE비즈니스스쿨에 진학했어요. 유학처로 스페인을 택한 이유는 경영학석사(MBA) 과정이 1년 반 미만으로 짧고 젊은 층 위주인 미국에 비해 나이든 학생들도 많았기 때문이에요."

그는 거기서 인생역전 기회를 만들어준 친구를 만났다. "당시 25세의 이스라엘 개발자였어요. 사이버 보안업체에서 일했던 그가 비트코인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쓴 20페이지짜리 비트코인 백서를 줬어요. 당시만 해도 비트코인 초창기였는데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보니 새로운 미래가 보였죠."

그 길로 그는 노트북을 사서 비트코인 채굴 소프트웨어를 가동했다. 그렇게 캐낸 비트코인들의 가격이 치솟으며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됐다. "비트코인 투자 성공 후 창업 자금을 마련했죠."

MBA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코오롱그룹 계열사 중 스타트업 투자를 총괄하는 이노베이스에 들어가 2018년까지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일을 했다. "그때 젊은 창업가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 경험 덕분에 2018년 페어스퀘어랩을 창업했죠."

거래소 옮겨 다니며 돈 버는 독특한 AI 매매 시스템 개발

페어스퀘어랩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스타트업이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암호화폐 매매 시스템, 기업들의 암호화폐 거래를 위한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 조각투자 플랫폼 '트위그' 등 크게 3가지 사업을 해요. 여기에 스타트업의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전달하는 '뉴스럴' 서비스도 하죠."

독특한 방식의 AI 매매 시스템은 그동안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김 대표가 개발한 시스템은 전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 다양한 차익거래 기회를 발굴하고 이를 AI 에 반영해 무위험 차익거래를 하는 자동매매 시스템이다.

이런 방법은 미국 증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국은 증시가 하나이지만 미국은 증시가 여러 개죠. 미국 증권사들은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라 고객을 위해 가장 좋은 가격에 매매를 해줘야 하는 규정이 있어서 중개인이 항상 여러 거래소의 가격을 비교해요. 이를 암호화폐 거래에 활용했죠."

관건은 AI가 빠르고 정확하게 가격 비교를 하는 기술이다. 여기에도 독특한 방식을 도입했다. 대부분 AI들은 데이터를 찾아서 학습하는 기계학습(머신러닝)으로 발전하지만 김 대표가 개발한 AI는 사람이 데이터를 입력해 수동으로 학습을 시킨다. 증권사와 은행 등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매매 전문가들의 경험을 AI에 담기 위해서다. "노련한 매매 전문가의 경험은 AI가 데이터로 학습하기 힘들어요. 결국 전문가의 매매 전략을 수동으로 AI에게 가르쳐야죠."

이를 위해 그는 은행, 증권사 등에서 오래 일한 다수의 투자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처음에 전문가를 영입하느라 고생했어요. 증권사에서 매매를 잘해 수억 원씩 성공 보수를 받는 전문가들에게 스타트업에 오라고 하니 다들 거절했죠. 지금은 블록체인에 대한 기대 때문에 전문가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김 대표는 AI를 이용한 매매 시스템에 개인들의 참여를 막고 있다.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조심스러워 개인들의 참여를 막고 있어요."

김준홍 페어스퀘어랩 대표가 서울 신사동 사무실에서 AI로 암호화폐의 매매를 돕는 시스템 개발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김준홍 페어스퀘어랩 대표가 서울 신사동 사무실에서 AI로 암호화폐의 매매를 돕는 시스템 개발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기업들의 암호화폐 거래 위한 KDAC 설립

그는 기업들의 암호화폐 거래 중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을 만들어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로부터 가상자산사업자 승인을 받았다.

KDAC에는 신한은행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부터 KDAC, 신한은행, 코빗이 협력해 기업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암호화폐를 매입해 보관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미국은 막대한 현금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 2, 3년 전부터 암호화폐 거래에 뛰어들어 돈을 많이 벌었어요. 테슬라는 비트코인을 4만 개 이상 갖고 있죠. 그런데 국내 기업들은 방법이 없어서 암호화폐를 원화로 거래하지 못했어요. 이번에 신한은행과 손잡고 기업들이 원화로 암호화폐를 사고팔 수 있는 길을 열었죠."

KDAC에서 거래할 수 있는 기업들은 상장사들만 가능하다. "모든 기업에 문을 열어주면 서류로만 존재하는 가짜 기업(페이퍼컴퍼니)도 들어와 시장이 혼탁해지면서 문제가 발생해요. 기업명을 밝힐 수 없지만 수십 개 기업이 계좌를 개설했어요."

김 대표는 장기적으로 AI 매매 시스템을 KDAC에 접목할 계획이다. "빠르면 올해 말에 AI 매매 시스템을 KDAC에 연동할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좀 더 투자 수익을 확대할 수 있죠."

NFT 활용한 조각투자 플랫폼 트위그 운영

김 대표가 운영하는 '트위그'는 개인들의 조각투자를 위한 플랫폼이다. "MZ세대들을 위한 투자 상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투자를 권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가상공간에 맞는 새로운 자산을 찾아줘야죠."

그런 점에서 조각투자를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 봤다. "조각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희소성이죠. 희소한 상품의 소유권은 훌륭한 조각투자 상품이 돼요."

슈퍼카에 이어 두 번째로 고려 중인 조각투자 상품은 '보어드 에이프 요트 클럽'(bored ape yacht club, BAYC)이라는 디지털 그림이다. "2017년 미국 라바랩스에서 '크립토펑크'라는 다양한 디지털 그림을 1만 개 만들어 팔았는데 이 중 희소성 높은 그림 하나가 경매에서 130억 원에 팔렸어요. BAYC가 지난해 말 크립토펑크의 가격을 넘어섰어요. 원숭이가 등장하는 이 그림은 1만 개의 NFT 상품으로 발행됐는데 1개당 3억 원 이상에 거래되는 것도 있어요."

따라서 BAYC를 구입해 프로필 사진이나 스마트폰에 배경 사진 등으로 깔아 놓으면 졸지에 3억 원짜리 상품이 된다. "디지털 파일이지만 함부로 복사하면 저작권 위반으로 처벌을 받아요. NFT를 구매해 소유권을 갖고 있는 사람만 사용할 수 있죠."

김 대표는 BAYC 중 하나를 조각투자 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최근 구입했다. "판매 시기는 미정입니다. 구입한 그림은 변형이 가능해 기업들이 마케팅에 활용하도록 하고 수익을 올릴 수 있죠. 그러면 조각투자 상품을 구입한 이용자들이 수익을 나눠 가질 수 있어요."

김준홍 페어스퀘어랩 대표가 사무실 한편에 전시된 앤디 워홀의 그림이 그려진 희소한 자동차 모형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슈퍼카 등 희소성 있는 다양한 조각투자 상품을 계속 개발할 계획이다. 배우한 기자

김준홍 페어스퀘어랩 대표가 사무실 한편에 전시된 앤디 워홀의 그림이 그려진 희소한 자동차 모형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슈퍼카 등 희소성 있는 다양한 조각투자 상품을 계속 개발할 계획이다. 배우한 기자


정부의 조각투자 규제가 관건

문제는 정부의 규제다. 금융위원회에서 최근 조각투자의 증권성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말은 조각투자가 증권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만약 정부에서 조각투자 상품을 증권으로 보면 기존 조각투자 상품을 다루는 업체들은 사업 방식에 따라 증권사들처럼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경우에 따라 스타트업들이 사업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혁신 기술과 상품을 제도나 법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미술품 NFT를 증권으로 본다면 유명 창작자들의 작품도 증권 취급을 해야 하나요."

하지만 여기에도 길이 있다. 김 대표는 이런 문제를 감안해 트위그의 조각투자 상품이 증권성 논란을 비껴갈 수 있도록 조합 개념을 도입했다. "다수의 참여자가 소수의 누군가에게 운영을 위임하면 금융상품이 되죠. 주식 투자자들이 증권사에 주식 매매 대행을 맡기는 경우가 그렇죠. 그러나 트위그의 조각투자는 상법상 조합개념입니다. 누군가에게 매매를 위임하지 않고 조합을 결성해 조합원 전체 동의로 매매를 해요. 따라서 투자자들이 회사와 1 대1 계약 거래를 하는 다른 조각투자 스타트업과 달라요."

어스2 등 디지털 부동산에도 투자 “미래 시대 자산 지속 발굴”

김 대표의 목표는 미래 자산을 계속 발굴하는 것이다. 최근 그는 메타버스에서 부동산 투자를 늘렸다. "2020년 10월부터 메타버스 부동산거래 서비스인 '어스2'에서 건물을 샀어요. 해운대 마린시티, 부산의 아난타힐튼 호텔 등 국내와 홍콩 일본의 부동산을 샀는데 지금 많이 올랐어요."

어스2에서 해외 부동산을 매입한 것은 애국심도 관련이 있다. "어스2에서 지도를 확대하면 구입자 국기가 표시돼요. 서울 광화문에 중국, 일본 국기가 많이 보여요. 반면 태극기는 별로 없어요. 순간 애국심이 발동해 도쿄의 아사히TV 본사 등 여러 건물을 샀죠. 어스2에서 도쿄를 확대하면 태극기가 많이 보입니다."

그는 금융상품도 탈중앙화 물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지금 MZ세대들은 블록체인에 매료돼 있고 탈중앙화를 좋아해요. 오히려 정부 규제 등 집중된 중앙화가 공동의 이익을 해친다고 보죠. 따라서 금융서비스도 탈중앙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요."

여기에 블록체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래지향적인 블록체인 기술이 실생활 곳곳에서 쓰이는 것을 보고 싶어요. 이런 시도를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눈으로 보면 행복하겠죠."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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