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어렵다는 특징 이용해 은닉
이혼 소송 전 가상화폐 구매해 놓기도
숨겨진 재산 찾으려 '포렌식 조사관' 고용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소프트웨어 업체를 운영하던 프란시스 드소자와 에리카 드소자 부부는 결혼 16년 만인 2017년 이혼했다. 당시 자녀 양육권과 회사 판매 수익 360만 달러(약 43억 원)에 달하는 주택 등 재산분할도 마쳤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된 것이 있었으니 프란시스가 아내와 별거 중이던 2013년 이전에 몰래 구매했던 비트코인이었다. 15만 달러를 투자해 1,000개를 구입한 비트코인은 거래소 파산으로 절반가량을 날렸으나 이혼 소송 때인 2017년엔 2,100만 달러 가치로 뛰었다. 이를 알게 된 에리카는 분할 소송을 제기했고, 3년이 흐른 2020년 법원은 600만 달러를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례는 암호화폐 분할 관련 첫 이혼 소송으로 통한다.
미국에서 이혼 소송 중 재산 분할 과정에 암호화폐가 재산권 분할을 골치 아프게 하는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암호화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자에게 알리지 않거나, 이혼 전에 암호화폐를 구매해 숨겨놓는 방식으로 재산을 빼돌리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뉴욕의 이혼 전문 변호사 재클린 뉴먼은 "예전엔 매트리스 밑이나 (대표적인 조세 피난처인) 케이맨 제도 계좌에 재산을 숨겼지만, 이젠 암호화폐가 은닉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부동산·예금·적금 등의 재산 분할이 주요 쟁점이던 이혼 소송에 암호화폐 분할이 새로운 풍속으로 떠오른 셈이다.
암호화폐가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은행 계좌나 부동산 등과 달리 추적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디지털 지갑은 탈중앙화돼 중앙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지갑 주인이 설정한 암호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거래 내역이 블록체인에 기록되기 때문에 전문가는 추적할 수 있지만 일반인은 사실상 확인이 어렵다.
이런 빈틈을 이용해 이혼 소송 전 재산을 숨겨놓는 '꼼수'가 많다고 전문가들을 설명했다. 뉴욕에서 근무하는 포렌식 조사관 닉 히모니디스는 한 여성이 이혼 소송 중 남편을 '재산 과소 신고'로 고발한 적이 있었다고 NYT에 밝혔다. 법원의 승인을 받은 후 히모니디스 조사관은 남편의 노트북을 검사했고, 거기서 70만 달러(약 8억3,500만 원)의 암호화폐가 든 디지털 지갑을 발견했다. 또 다른 이혼 사건에선 부인이 이혼 소송을 제기하기 1주일 전 남편이 몰래 암호화폐 계좌에서 200만 달러(약 23억8,700만 원)를 개인 디지털 지갑에 옮겨놓은 후 해외로 떠나버렸다.
이 때문에 이혼 당사자들은 배우자가 숨겼을 암호화폐를 찾아내기 위해 수만 달러를 들여 전문 포렌식 업체에 조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폴 시베닉 블록체인 추적 업체 사이퍼블레이드 소속 조사관은 최근 수년간 이혼 당사자들의 조사 의뢰를 100여 건이나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조사 결과 남편이 아내 몰래 숨겨둔 암호화폐 규모가 1,000만 달러(약 120억 원) 이상이었던 경우도 수차례였다고 전했다.
암호화폐는 점차 이혼 소송의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지만, 미국에선 관련 규정이 미비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지난해 5월 "이미 2,000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암호화폐를 가지고 있으며 지난 4월 기준 시가총액은 2조 달러를 넘어섰다"고 추산했다. 그러면서 가치 변동이 심한 암호화폐 특성상 재산 분할을 쉽게 하려면 가치 계산 방법이나 수익 관련 세금 부담 비율을 배우자들끼리 미리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도 이혼 시 암호화폐를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비트코인을 재산 가치가 있는 무형재산으로 인정해 압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