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관련 소송에서 원본과 다른 결정서 제출
피해 발달장애인 변호인 "부실 심사 덮으려 조작"
정신과 전문의 충원율 5년 새 78%→36%로 급감
공주 치료감호소(국립법무병원)에 형기의 두 배가량 갇혀 있던 발달장애인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과정에서, 법무부가 제출한 ‘치료감호 종료 불허 결정서’ 내용이 뒤바뀐 사실이 확인됐다. 변호인단은 “법무부가 부실 심사를 덮으려 내용을 조작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17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모(24)씨의 가족은 치료 감호 종료를 신청했다가, 지난해 1월 법무부 산하 치료감호심의위원회로부터 “충동조절이 어렵고, 타 환자와의 마찰로 보호실에 조치되는 등 치료경과 및 사회적응력 등을 종합할 때 재범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허하는 결정서를 받았다.
그런데 최근 이씨 등이 서울중앙지법에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등 소송에서 법무부는 '같은 결정서'를 제출했는데 “비행사실 및 사회적응력 등에 비추어 계속 치료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만 기재됐다. 다른 수용자의 불허 결정서 문구와 토씨 하나 달라지지 않은 '복사 붙여넣기' 문구다.
이씨를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는 ‘뒤바뀐 결정서’에 대해 "앞선 치료감호심의위 결정이 부실하게 이뤄진 것을 감추려고, 내용을 바꾼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부실 심사로 인해 장기 수감 피해를 봤다는 주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결정 이유를 뒤늦게 바꾸려 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법무부는 "현재 본 사안에 대한 소송 진행 중에 있어 자세한 답변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씨의 변호인단은 "결정서가 달라진 이유에 대해 법무부는 철저히 조사해 경위를 밝혀야 한다"며 "결정서 작성은 치료감호심의위 고유 권한으로, 법무부 공무원이 위원들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내용을 임의로 바꿨다면 공문서 변조행위"라고 지적했다.
앞서 이씨는 2019년 4월 준강도 범행으로 구속돼 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구치소와 교도소를 거쳐 2020년 4월부터 공주 치료감호소에 수용됐다.
이씨 측은 장애인 차별행위중지 임시조치를 신청해, 지난해 12월 2심인 서울고법으로부터 "법무부는 자폐성 장애인이 실질적으로 배제되지 않도록 심사하라"는 권고를 받아냈다. 이에 따라 기존엔 한쪽짜리 동태보고서만 갖고 심사를 받던 이씨는 주치의 면담결과 보고서 등에 근거해 보다 충실한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형기의 약 2배인 33개월을 갇혀 있었던 이씨는 올해 1월 치료감호 가종료 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최정규 변호사는 "그 사이 당사자의 상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법원 조정 권고가 나오자 1년 만에 정반대 결정이 내려졌다"며 "이전 심사에선 자폐성 장애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자폐성 장애는 약물치료의 대상이 아니며 애초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점, 현재 치료감호소 내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별도의 언어·심리·행동 치료 과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치료에 한계가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치료감호소는 범죄를 저지른 약물중독자, 정신장애인 중 '치료 필요성'과 '재범 위험성'이 있는 이들을 수용하는 기관이다. ‘재범 없는 사회’를 위해 재소자를 치료하는 병원인 셈이다. 치료감호법에 따라 법원에서 선고된 형량과 별개로 치료감호 명목으로 최장 15년(살인의 경우 21년)까지 수용될 수 있다.
이씨와 함께 장애인차별구제·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 중인 지적장애인 황모(44)씨도 형량(1년 6개월)의 8배에 이르는 11년 4개월을 치료감호소에서 보냈다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은 직후인 지난해 1월 가종료 결정을 받았다.
치료감호소 환경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치료감호소 수용인원은 871명인데 반해, 정신과 전문의는 파트타임까지 포함해 5.5명에 불과하다. 1인당 158명을 담당하고 있다. 2016년만 해도 정신과 전문의 충원율은 78.5%(정원 14명 중 11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36.7%(정원 15명 중 5.5명)까지 급감했다. 게다가 최근에도 정신과 전문의 4명이 열악한 처우를 이유로 연이어 퇴직 의사를 밝혔다.
충실한 심사 필요성과는 별개로, 발달장애인에 대한 치료감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줄곧 있어 왔다. 신관우 한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법 자폐성 장애인의 처우에 관한 연구'에서 “범법 전력이 있는 자폐성 장애인을 대상으로 단순 약물처방이 주를 이루는 치료감호 처분은 지양해야 하며, 자폐성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형사사법적 절차와 사회 서비스를 안내하고 보조할 수 있는 전문보호인력의 양성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서울고법 역시 2019년 치료감호가 청구된 한 자폐성 장애인 형사 사건에서 "국내 유일의 치료감호소에는 자폐장애를 가진 피치료감호자에게 단순 약물 복용 지시 외에는 사회 적응력 향상을 위한 다른 치료, 교육, 훈련 과정을 전혀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시설 확충을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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