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 계기로 '성교육 과외' 수요 급증
일부 업체, 잘못된 성 지식·고정관념 퍼뜨려
"학원 수업만 받으면 자격증" 공신력 문제도
교육계 "공교육이 책임지고 적극 교육해야"
이모(41)씨는 최근 초등학생 아들에게 "왜 남자가 여자보다 더 야한 것에 끌리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이씨가 방문 수업을 의뢰한 성교육 강사가 다녀간 직후였다. 이 강사는 '성교육 전문'을 표방하는 사설 기관에 소속돼 있다가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자녀가 사춘기를 맞기 전에 성교육을 받으면 좋겠다 싶어 마음 맞는 동네 엄마들과 과외 수업 자리를 마련했다는 이씨는 "선생님이 남녀 간 차이를 설명하면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한 모양"이라며 "성교육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공인 자격증이 있는 강사를 다시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성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학교 밖 교육 기관을 찾는 일이 늘어나는 가운데 청소년에게 잘못된 성 고정관념이나 차별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수업도 적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선 공신력 있는 성교육 강사 양성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차제에 사회적 합의에 바탕한 성교육 가이드라인이 정립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성교육 사교육' 입소문 타고 성행
1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학부모 사회에서 '성교육 과외' 수요가 급증하게 된 계기는 n번방 및 박사방 사건이었다. 함경진 서울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부장은 "n번방 사건 등에 초등학생도 연루됐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학부모들이 학교 차원의 성교육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짚었다. 온라인 맘카페를 중심으로 자녀 성교육 방법을 문의하는 글이 늘어났고, 이에 호응해 학부모 및 청소년을 상대로 성별·연령별 맞춤 강의를 홍보하는 사설업체가 급증했다는 것이 현장의 전언이다. 한 유명업체 대표강사는 '엄마는 여자라서 아들에 대해 전혀 모르니 전문가에게 성교육을 맡겨야 한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교육의 사교육화가 급진전하면서 함량 미달의 강의도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한 강사는 강의 및 저서를 통해 "남자 아이는 소변 참기를 통해 성욕을 억제하는 훈련을 시켜야 성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며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또 다른 강사는 "남자의 뇌는 여자와 완전히 달라서 성에 더 자극적으로 반응한다"고 교육하는데, 이 또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일 뿐더러 아이들에게 성 고정관념을 부여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함경진 부장은 "우리 기관에 성교육을 의뢰하는 학부모 가운데 사설업체의 성차별적 교육 내용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공교육에서 적극적인 성교육 필요"
성교육 사설업체 성행은 공교육 부재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2020년 서울에 사는 초·중·고교생 양육자를 상대로 진행한 '학교 성교육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7%가 학교 성교육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교육부 지침상 초·중·고교는 연간 15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성교육(성폭력 예방교육 3시간 포함)을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당 1명뿐인 보건교사가 전교생 성교육을 감당하기 어렵다 보니 외부 강사를 초빙해 성교육을 맡기는 실정이다.
성교육 강사 자격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일부 사설업체는 자체적으로 만든 교육과정만 이수하면 성교육 강사 자격을 부여하고 있어 전문성 문제가 제기된다. 공공기관 중 성교육 강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곳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지자체 청소년성문화센터인데, 이들 기관도 교육시간이나 커리큘럼이 천차만별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성교육은 내용이나 효과 면에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만큼, 교육 당국이 책임감을 갖고 주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성교육 내용 및 범위에 대한 합의 부재로 학교 현장이 성교육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며 "미국의 사례처럼 교육청·학부모·교사 간 합의로 명확한 성교육 가이드라인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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