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황대헌(강원도청)은 강력한 멘털의 소유자다. 이틀 전 그렇게 억울한 실격을 당하고도 흔들림 없는 압도적인 레이스로 온 국민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2018 평창올림픽 막내였던 황대헌은 4년 사이 에이스로 폭풍 성장했다. 19세 막내로 참가한 평창올림픽 경험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4년 전 “경험 부족은 패기로 만회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황대헌은 1,000m와 1,500m에서 노메달에 그쳤지만 한국 쇼트트랙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500m에서 기어코 은메달을 따냈다.
황대헌은 첫 올림픽 이후 열린 2018년과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년 연속 2관왕(500m·남자계주 5,000m)에 오르며 대표팀 에이스 임효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팀 내 불협화음이 일었다.
2019년 6월 진천선수촌에서 암벽훈련을 하던 중 임효준이 황대헌의 바지를 잡아당겨 신체 일부를 노출시키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임효준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1년 자격 정지를 받았고, 강제추행 혐의 재판 과정에서 중국으로 귀화했다.
황대헌은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지만 빙판 위에선 ‘강철 멘털’을 유지했다. 지난해 5월 치러진 국가대표 선발전 때 남자부 종합 1위에 올라 에이스 자리를 굳혔다. 베이징올림픽 모의고사인 이번 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로 쾌조의 컨디션을 발휘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베이징올림픽에 앞서 황대헌을 “한국의 큰 희망”이라고 조명했다.
하지만 황대헌 ‘원톱’ 체제로 나선 대표팀은 베이징 대회 초반부터 큰 혼란과 충격에 빠졌다. 유력한 금메달 종목으로 꼽혔던 지난 7일 남자 1,000m에서 황대헌과 이준서가 각각 조 1, 2위로 준결승을 통과했지만 석연찮은 판정 탓에 실격을 당했다.
중국의 편파 판정 논란 속에 메달을 도둑 맞은 기분이지만 황대헌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경기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장애물을 마주했다고 반드시 멈춰서야 하는 건 아니다. 벽에 부딪힌다고 돌아서거나 포기하지 말라. 어떻게 벽을 오를지, 뚫고 나갈지 또는 돌아갈지 생각하라’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명언을 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섯 살에 스케이트를 처음 탄 황대헌은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와 고인이 된 노진규를 롤모델 삼아 빙판을 누볐다. 안양 안일초등학교 1학년 때 ‘나의 꿈’을 그려오라는 숙제에 ‘나의 꿈은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열심히 연습’이라고 적을 정도로 일찌감치 강한 열망을 보였다.
출전하는 전국대회마다 금메달을 휩쓸었던 황대헌의 꿈은 2016년에 마침내 실현됐다. 2016~17시즌 월드컵 시리즈를 앞두고 국가대표 선발전에 뽑힌 3명이 불법도박 혐의로 기소돼 차순위였던 황대헌이 8명 엔트리에 들어갔다. 실력보다는 행운이 따른 태극마크였다.
하지만 황대헌은 2차 월드컵 1,000m 준준결승에서 1분20초875로 당시 세계신기록을 썼고, 6차 대회에선 1,000m 금메달을 수확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가능성을 보인 황대헌은 2017년 4월 대표 선발전에서 2위에 올라 운이 아닌 실력으로 당당히 국가대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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