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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자리에서 계좌 무제한 개설… 중고거래 사기 악용되는 ‘자유적금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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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앉은자리에서 계좌 무제한 개설… 중고거래 사기 악용되는 ‘자유적금계좌’

입력
2022.02.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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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으로 유예기간 없이 새 계좌 개설 가능
계좌번호 확인 기반 사기 예방 수단 무력화
물품 사기는 즉시 계좌 지급정지 조치도 불가
경찰 신고해도 추가 피해 방지 마땅치 않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중고 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서 사기 거래로 악명을 떨친 '하○○'은 자기 신분을 버젓이 밝히고 사기를 쳤다. 본인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은행 계좌번호를 제시해 피해자를 안심시키고는, 돈이 입금되면 물건을 보내지 않은 채 연락을 끊었다.

인터넷 사기 거래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 '더치트'엔 지난달 3~21일 하씨에게 당했다는 피해 사례가 76건 등록됐다. 19일에 걸쳐 하루에 4건꼴로 사기를 저지른 셈이다. 경찰도 지난달 3일부터 피해 신고를 여럿 접수했다. 사건을 맡은 인천 삼산경찰서는 "하씨 신병은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씨가 신원을 드러낸 채 같은 수법의 사기 행각을 벌이는 과정에서 요긴하게 쓰인 건 '자유적립식 적금계좌(자유적금계좌)'였다. 통상적인 입출금 계좌와 달리 이 계좌는 유예 기간 없이 얼마든지 개설할 수 있는 점을 악용, 매번 다른 계좌번호를 동원해 사기 방지 수단을 무력화한 것이다. 게다가 현행법상 중고 거래 사기는 즉각적인 계좌 동결 조치 대상이 아니다 보니 경찰이 이런 신종 수법에 대응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좌번호 무한정 제공... 사기 이력 확인 어려워

1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온라인 중고 거래자는 보통 더치트 등에서 입금 계좌를 조회해 판매자의 사기 전력을 확인한다. 그렇다 보니 하씨처럼 여러 계좌를 사기에 동원할 경우 이런 방식이 효과를 내기 힘들다. 하씨는 범행 과정에서 A은행의 자유적금계좌 19개를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 피해자는 "(하씨가 알려준) 계좌 예금주 이름이 주민등록증 성명과 일치하고, 더치트에서도 사기 이력이 없다고 나오니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자유적금계좌는 지정된 날짜 없이 예금주가 원할 때 입금할 수 있는 계좌다. 통상 예금주가 보유한 다른 통장과 연동해 이체 방식으로 돈을 적립하며 다른 사람의 송금도 받을 수 있다. 특히 이 계좌는 신규 개설에 제약이 없다. 일반 입출금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나야 신규 계좌 개설이 가능한 것과 대비된다. 또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비대면으로 간단히 계좌를 틀 수 있다.

"물품사기는 지급정지 대상 아냐" 경찰도 난색

사기를 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돼도 추가 피해 발생을 막을 수 있는 조치가 제한적이다. 중고 거래와 같은 물품 사기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규정된 계좌 지급정지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서다. 피해가 의심되면 금융기관이 경찰 요청 없이도 해당 명의자의 전 계좌를 즉시 지급정지 할 수 있는 보이스피싱과는 뚜렷이 구분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물품 사기는 주로 개인간 거래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은행이 일일이 나서 처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이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은행에 공문을 발송해 자유적금계좌와 연결된 입출금 계좌의 지급정지를 신청해야 한다. 다만 법적 근거가 없는 요청이라 이행 여부는 은행의 판단에 달렸고, 무엇보다 영장 발부, 공문 발송 등 신청 절차를 밟는 데 최소 1주일이 소요된다. 그동안 새 계좌를 만들어 사기를 쳐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은 셈이다. 하씨의 경우 경찰에 첫 피해 신고가 접수된 이후 3주가량 지나서야 입출금 계좌가 동결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을 통한 개인 물품 거래가 갈수록 늘어나는 만큼 보다 실효성 있는 사기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의 물품 사기 수사 방식은 사후 검거와 처벌에 초점을 두고 있어 추가 피해 방지가 어렵다"며 "영국의 사기정보분석국 같은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신고 즉시 은행 계좌, 휴대폰과 같은 사기 수단을 즉각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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