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까지 PKM갤러리서
RM도 다녀간 홍영인 개인전 'We Where'
"코끼리의 발에 대해 생각했다." 코끼리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대역의 초저주파를 쏘아 수 ㎞ 떨어져서도 서로 소통한다. 그 파동을 감지하는 게 크고 두툼한 발이다. 영국에 살면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홍영인(50) 작가는 할머니 코끼리 티와 손녀 코끼리 안잔을 전시장 한쪽으로 불러들인다. 그들을 위해 짚풀로 엮어 만든 신발을 두면서다.
발 길이만 27~71㎝에 이르는 4켤레의 짚신은 할머니가 앞서고, 손녀가 뒤따르는 모양새다. 막 신발을 벗어 놓고 진흙 목욕을 하러 물 웅덩이로 들어간 '티와 안잔'이 눈앞에 선하다. 이들 뒤론 14분 분량의 소리가 깔린다. 물 웅덩이와 아프리카 삼림, 동물원 등 인간이 코끼리를 마주할 수 있는 장소에서 직접 수집한 것이다.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인간과 동물, 그 구분이 무슨 소용이랴 싶다.
인간만 '사회적 동물'이란 법은 없지 않나. 무리 지어 사는 코끼리는 모계사회를 이룬다. 동물에게도 '사회'가 있고, '소통'을 한다. 동물을 인간보다 하등한 위치에 두는 건 인간 중심 사고다. 거대 서사 아래 누락된 소수의 목소리에 줄곧 귀 기울여온 홍영인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9' 이후 2년 만에 국내 전시로 찾아왔다. 그의 개인전 '위 웨어(We Where)'가 PKM갤러리에서 오는 26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2018년부터 영국 체스터 동물원을 드나들면서 동물을 관찰하고, 공부했다. 유독 그의 눈에 띈 건 코끼리, 고릴라, 원숭이다. "우리가 동물을 보듯, 그들도 우리를 본다" "동물이 내 안에 있고, 우리가 동물이 아닐까"라는 감각이 깨어나면서다. 대형 자수 작품인 '두 세계 사이 하나의 문(One Gate between Two Worlds)'은 조선시대 사당을 그린 감모여재도에서 영감을 얻었다. 위패를 붙이던 자리에는 고릴라와 원숭이가 앉아서 놀고 있다. 작가가 직접 동물원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항상 인간의 시선을 받아내야 했던 고릴라와 원숭이가 이 작품에선 거꾸로 인간을 내려다본다.
자수와 직조는 그의 주된 작업 방식이다. 작가는 그간 비주류였던 여성 노동자의 자수 공예와 바느질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이 작품에서도 남성 중심의 유교적 제례 공간을 여성의 자수 작업을 통해 해체하고, 재해석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 2점이 그 선상에 있다. 1970~80년대 여성 직공을 호명하던 (이름이 아닌) 숫자와 이들의 수기에서 따온 '남의 고통이 내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곧 변할 것만 같았다'는 문장 몇 개를 해체하고 이어붙였다.
텍스타일과 퍼포먼스가 처음 만났던 그의 과거 작업도 소개한다. 2017년 작 '사진-악보' 연작은 서울역사박물관의 한국전쟁 이후 아카이브 사진의 윤곽을 자수로 새기고, 이를 악보 삼아 피아노로 연주한 작품이다.
영국 바스 미술대학 전임교수로 재직 중인 홍영인은 "이번 전시에는 동물과 인간, 예술과 공예 등 충돌하는 경계에 대해 계속 질문하면서 어떻게 해야 타자성을 자기화할 수 있을까, 하는 오랜 고민이 담겼다"고 했다. 선 드로잉과 바느질, 펠트 조각, 악보, 음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을 빌려 '하나의 역사'를 다시 쓰는 그의 작업은 수평적 공동체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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