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미 기업인 44% "방역 규제 탓 이전 고려"
노스페이스 진출 25년 만에 지난달 철수
BoA·웰스파고 등 지점 싱가포르로 이전 검토
아시아 경제·금융 중심지 위상 흔들
홍콩 ‘엑소더스(대탈출)’ 행렬에 불이 붙었다. 정부의 강력한 ‘제로(0) 코로나’ 정책에 질린 외국 기업들이 등을 돌리면서다. 그렇지 않아도 커지는 중국의 입김 탓에 이곳을 떠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던 상황에서 기름을 부은 형국이다. 돈과 사람이 홍콩을 떠나면서 아시아 경제ㆍ금융 중심지로서의 명성에도 금이 가고 있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홍콩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무관용 정책에 질린 외국 기업들이 등을 돌리면서 금융 중심지와 비즈니스 허브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주재 미국 상공회의소(암참)가 기업 대표 2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4%는 당국의 엄격한 방역 규정 탓에 현지를 떠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로이터 통신도 이미 홍콩을 떠났거나 떠날 계획인 외국인 전문 인력이 수천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 지난해 등산장비ㆍ의류 전문 업체인 노스페이스, 팀버랜드 등을 보유한 VF코퍼레이션이 25년 만에 홍콩에서 철수하는 등 여러 기업과 인력이 이탈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외국인 탈(脫) 홍콩 움직임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2019년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현지 주민들뿐 아니라 외국 기업들도 해외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5월 암참 설문조사 당시에도 42%가 홍콩을 떠날 계획을 갖고 있거나 이주를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다만 당시에는 정치적 요인을 가장 큰 이탈 원인으로 꼽은 반면, 올해는 가혹한 방역조치에 대한 불만이 컸다.
사실 홍콩의 감염병 상황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코로나19 누적 감염자는 1만5,400여 명으로 전체 인구(726만 명)의 0.2%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근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가 속출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홍콩 당국은 중국 본토처럼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나라 안팎을 틀어막고 있다. 지난해부터 기존 거주자 입국만을 허용하고 있는데, 오미크론 변이 확산 이후로는 아예 미국과 영국 등 8개 국가에서 출발하는 여객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 한국 등 150개국을 대상으로는 여행객 환승도 금지했다.
문제는 글로벌 기업 핵심 인력들이 국경을 넘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사람과 돈이 홍콩을 떠난다는 데 있다. 앞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주요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웰스파고가 홍콩 임직원 일부를 인근 싱가포르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신규 투자부터 인재 채용까지 꽉 막히면서 홍콩이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곳 중 하나가 되고 있다(가디언)는 지적마저 나올 정도다.
설상가상으로 당분간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 정부가 좀처럼 문턱을 낮출 의향이 없는 탓이다. 타라 조지프 암참 회장은 “현재 시점에서 정말 뼈아픈 것 중 하나는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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