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서 4월 10일까지
내방가사 90여편 기획전시
'이내말삼 드러보소.'
조선의 여성들이 한글로 짓고 부르던 내방가사는 으레 이 4.4조 운율의 시구로 운을 뗀다.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구와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의 결집체(서주연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인 셈이다. 내 말 좀 들어보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던 당대 여성들의 소통 욕구가 분출되던 거의 유일한 창구가 내방가사였다.
내방가사 90여 편을 선보이는 기획전시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가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매운 시집살이에 대한 며느리 설움이나 독수공방하는 과부의 한탄을 예상했다면 보기 좋게 틀렸다.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꾸밈없이 진솔하게 써 내려간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을 통해 문학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기록문학으로서 내방가사의 진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여성이 남긴 한글 기록이라는 점을 내세워 내방가사의 노랫말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 여성의 삶과 애환... 여성이 주체 된 기록 문학
총 3부로 구성된 전시 중 1부 '내방 안에서'는 내방가사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몸풀기쯤 해당한다. '시집가는' 딸의 축복을 빌거나('귀한 딸을 위한 노래라') '사랑사랑 내사랑은/ 손녀말고 다시없네'라며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손녀사랑가')을 노래한다. 광복기와 한국전쟁 와중에 쓴 육아일기('명애·현애이야기')까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희로애락이 펼쳐진다. 이런 이유로 내방가사는 여성들의 신변잡기나 사적인 글쓰기로 폄하됐고, 제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10년대 들어 뒤늦게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집단의 역사만큼 개인의 서사도 재조명되기 시작하면서다. 무엇보다 근대 이전 여성이 주체가 된 기록 문학이라는 점에서 내방가사는 전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번 전시는 내방가사에 대한 그런 적극적 해석을 곁들였다. 아들 자랑을 하는 가운데서도 어머니로서의 자부심을 당당히 드러내거나('쌍벽가') 노동을 통해 부를 일군 성공한 여성의 이야기('복선화음가')를 다룬다. '기수가' 연작 7편도 눈에 띈다. 1867년 전후 파평 윤씨 가문의 딸들이 친정에서 잔치를 벌이면서 지은 '기수가'에 대해, 무절제하게 노는 그들의 모습을 꼬집으며 올케가 '답기수가'를 쓴 게 왔다 갔다 하면서 무려 7편의 연작 가사로 나온 작품이다. 시누이와 올케 간 판에 박힌 갈등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실은 딸과 며느리가 문예 실력을 겨루면서 가문 자랑을 하고 있는 게 그 속내다. 이렇게 작품 이면을 들여다보는 건 내방가사를 좀 더 흥미롭게 읽는 방법이다.
남원 윤씨가 남편을 떠나보낸 후 내면의 슬픔을 절절하게 적은 '명도자탄사'도 마찬가지다. 전시에는 남원 윤씨가 직접 쓴 원본이 아닌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후 시댁에서 엮은 책에 수록된 작품이 소개된다. 서주연 학예사는 "윤씨를 열녀로 칭송하기 위해 문중에서 문집에 남긴 것"이라며 "오늘날 해석은 윤씨가 열을 실천한 여성이기보단 생의 자기결정권을 적극 행사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고 했다.
소통의 욕구, 공감·연대로 나아가다
내방의 여성들이 부득이 딸, 아내, 며느리, 올케, 과부 등으로만 호명됐다면 근대 들어 새로 얻은 이름은 '신여성'과 '구여성'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결혼한 은촌 조애영이 1931년 '신혼가'에서 꿈의 좌절과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한편 구여성은 남편으로부터 일방적인 이혼 요구를 받은 서러움('시골여자 서러운 사정')을 표현한다. 당시 여성의 애환은 신구를 초월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시골여자 서러운 사정'은 구여성들이 개인의 슬픔에만 갇히지 않고 조혼 폐단 등 사회문제에 대해 또렷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나아가 '우리'도 배우고, 스스로를 보살피자고 하는 대목에선 다정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꽁꽁 닫혀 있던 내방의 문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2부 '세상 밖으로'에서는 남녀평등과 여성에 대한 학교 교육을 주장하는 '해방가', '위모사'가 소개된다. 그런가 하면 '소위남자 기름머리/ 눈썹단장 의복사치/ 모던보이 개똥일세'라고 신식 문물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무식무식 신사행세/ 남녀평등 자유란말/ 제입으로 하면서도/ 여자하대 더하더라'라고 허울뿐인 남녀평등을 비꼬는 '생조감구가'는 특히나 인상적이다. 서 학예사는 "그 어느 신문·잡지도 무학의 구여성 목소리는 담지 않던 당시 내방가사는 신·구여성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여성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는 따뜻한 매체였다"고 했다.
'만주망명가사' 역시 최근 새로 주목받고 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남편을 따라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을 측면 지원했던 김우락의 '해도교거사'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독립운동가(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의 아내로만 알려져 있던 김우락이 사후 86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추대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성의병단을 직접 조직하기도 했던 윤희순이 세상을 바꾸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지어 퍼뜨린 의병가사, 독립군가도 볼 수 있다.
3부 '소망을 담아'에 전시된 '덴동어미화전가'는 문학성의 최고조를 보여준다. 4번 결혼하고 불에 덴 아이를 홀로 키우는 어머니가 화자인 작품인데, 화전놀이에 모인 여성들은 덴동어미의 고통과 삶에 깊이 공감하고, 그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연대로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현재 전해지는 가사 중 가장 긴 '헌수가'는 두루마리 길이가 무려 14m에 이른다. 사흘에 걸쳐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쓰면서 부모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작품이다. '헌수가'를 비롯한 12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대대손손 전해주소
서 학예사는 "이름 석자 남기지 못한 여성들이 다행히 한글을 가졌기에 하고 싶은 말을 남긴 내방가사를 통해 낮은 자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였으면 한다"며 "소통이 어려운 시대, 조선 여성들이 보여줬던 소통의 욕구와 공감, 그리고 연대로 나아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왠지 조선 여성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듯했다. "어와 벗님네야/ 이 가사 듣고보고/ 대대손손 전해주소."
전시는 4월 10일까지. 평일 오후 3시 이뤄지는 전시해설과 함께 관람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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