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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사이버 렉카'에 끌려 다니는 한국

입력
2022.02.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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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허스토리’는 젠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오전 8시 발송되는 뉴스레터를 포털 사이트에서는 열흘 후에 보실 수 있습니다. 발행 즉시 허스토리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메일로 받아보시면 풍성한 콘텐츠, 정돈된 화면, 편리한 링크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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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나는 나조차 완벽하게, 온전히 습득하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딸에게 가르쳐야 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확실히 주장할 수 있고 그 권리를 손에 쥘 수 있는 세계를 그려보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 싸움은 지난할 것이며 끝없이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내 딸을 위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싸움을 계속할 거라고.

케이트 만 코넬대 부교수
저서 <남성 특권> 中

Her View : 여성의 관점

며느리가 겪는 시댁과의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 호응을 얻은 카카오TV 자체제작 드라마 '며느라기'의 한장면. 명절날 여자들은 작은 상에 모여 따로 밥을 먹고 있다. 카카오TV 캡처

며느리가 겪는 시댁과의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 호응을 얻은 카카오TV 자체제작 드라마 '며느라기'의 한장면. 명절날 여자들은 작은 상에 모여 따로 밥을 먹고 있다. 카카오TV 캡처


<44> '사이버 렉카'가 죽였다
(2022년 2월 10일자)

안녕하세요, 독자님. 허스토리입니다. 지난달 함께 바랐던 것처럼 성평등한 명절 보내셨나요? 늦은 새해 인사를 보내봅니다. 오늘은 한 여성의 죽음을 애도하며 뉴스레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최근 인터넷방송 BJ 잼미(본명 조장미·27)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안타까움과 동시에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간 이 여성은 온라인 세상의 집단 괴롭힘, 즉 사이버불링 십자포화를 견디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의 죽음은, 여성 혐오 문화가 자행한 사회적 살인입니다.

잼미는 트위치라는 플랫폼에서 인터넷 방송을 하던 BJ였습니다. 대중 앞에 스스로를 드러내 사랑을 받는 일이다 보니, 당연히 대중 의견에 일상이 좌우될 수밖에 없고 부정적 피드백에 노출될 확률이 높습니다. 온갖 성희롱, 스토킹 등 온라인 폭력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BJ는 고인 외에도 무척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폭력 외에도 잼미는 한 가지 '괘씸 혐의'를 더 덮어씁니다. 바로 그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이었습니다. 에펨코리아, 디시인사이드 등 남초 커뮤니티가 그 공격의 중심이었습니다.

유튜버 뻑가는 그를 저격하고, 이 주장을 강화합니다. 물론 페미니스트라는 게 저격과 공격의 이유가 되는 것 자체가 말도 되지 않습니다만, 2022년 한국 사회는 '페미'를 하나의 낙인으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뻑가가 저격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집게손가락' 손 모양을 했다 △ '이기야' '힘조' 같은 온라인 용어를 무심결에 사용했다 △ 광고한 쇼핑몰의 상품 디자인 중 페미니즘과 관련된 것이 있다. 잘못도 아니거니와,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것을 교묘하게 편집했고, 뻑가의 120만 구독자는 온라인 폭력에 동조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 등장하는 스트리머. 넷플릭스 캡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 등장하는 스트리머. 넷플릭스 캡처

뻑가의 콘텐츠는 여성 혐오 그 자체입니다. 핫펠트, 전효성, 안산, 프리지아 등 유명한 여성들은 물론이고 진명여고 학생들, '나는솔로'와 '아무튼 출근'에 출연한 일반인들까지 뻑가 저격의 대상이 됩니다. 그는 언론에서 읽은 기사를 이리저리 짜깁기하여 영상을 구성하고, 자신의 검증되지 않은 사견을 집어넣어 시청자들에게 편견을 주입합니다. 대체로 그것은 피씨(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한 발언을 하는 이나 기관에 대한 공격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등 남초 커뮤니티의 안티 페미니즘 정서를 되풀이합니다.

슬프게도, '혐오가 돈이 되는 메커니즘'은 이렇습니다. 뻑가, 가로세로연구소, 신남성연대 등 이른바 '사이버 렉카(온라인 이슈를 실어 나르며 조회수를 올리는 이슈 유튜버)'가 특정 대상을 지정해 저격합니다. 말도 안 되는 억측이지만, 유사 언론 혹은 분별없는 언론이 이를 받아쓰면서 대중에 전파합니다. 기사와 주장은 캡처돼 커뮤니티에 나돕니다. 이따금 해명할 가치가 없는 것은 해명하지 않는 것 또한 하나의 답이지만 대중들의 '피드백 요구'가 들이닥칩니다. 등쌀에 떠밀려 해명을 해도 문제입니다. 조사 하나, 시선 처리 하나, 단어 하나를 놓고 논란이 확산하며 또다시 사이버 렉카들은 이를 두고 '후속편'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조회수와 멤버십으로 버는 수익은 누군가를 저격하고 음해할수록 배가됩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플랫폼 등 생산과 확산에 기여한 주체를 규제할 것 ②이런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을 것. 허스토리를 보시는 독자분이라면 당연히 이런 '사이버 렉카'와 가깝지 않을 테고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8일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온라인폭력방지법' 제정에 착수한다"고 했어요. 온라인 폭력 게시물이 신고되면 신속하고 적절하게 삭제될 수 있도록 하고, 사업자들에 책임을 묻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고 합니다. 언론인권재단 역시 논평에서 "유튜브는 비영어권 콘텐츠의 유해성 심의의 문제에 대해 꾸준히 지적받았다"며 "구체적인 개선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어요.

여러분, 지난해 11월에 공개된 넷플릭스 '지옥' 기억하시나요. 그곳에는 화살촉이라는 조직의 리더인 스트리머와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스트리머는 마치 자신이 세상 사람들을 모두 심판할 권리라도 있는 듯, 누군가를 '저격'하고 '응징'합니다. 그러나 극 막바지에 드러난 그의 모습은 '텅 빈 자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충족될 수 없는 결핍을, 온라인 세계 추종자들의 열광으로 채워나갑니다. 실체 없이 자아만 비대해진 그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요즘 한국 현실이 '지옥'과 다를 바가 있을까요. 상식적인 공동체의 회복이 무척 절실해지는 2022년입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남성 특권

특권의식은 어떻게 혐오와 폭력을 낳는가? 오직 '남성'이라는 이유로 거머쥔 특권이 주조해내는 거대한 억압과 착취를 추적한 책. 이를 통해 여성혐오의 구조적, 철학적 기원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보면 '대체 모니터 뒤에 숨어 왜 저럴까' 생각하게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허스토리가 인터뷰했던 류호정 의원 역시 "악플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말했었죠. ( → 기사 보기 https://url.kr/pl4swv ) 물론 저 역시 다른 여성들에 비해 비할 바는 못되지만, 포털 사이트 악플이나 이메일을 통해서도 이따금 악성 피드백을 받곤 합니다.

사회 현상에 해당하는 온라인 폭력은 대부분 '잘못한 행위'가 아니라 '주체의 존재'를 향합니다. BJ로서, 국회의원으로서, 기자로서, 연예인으로서, 학생으로서 무엇을 하든 간에 악플의 초점은 '여성'에 맞춰집니다. 악플을 그다지 신경쓰진 않지만 이따금 마주칠 때면 '이들은 나를 여성 기자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도 생각하지 않는구나'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그 뒤틀린 마음의 근원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셀(Incel·서구권에서 비자발적 독신 남성을 일컫는 말)들은 여성을 피모이드(여성+로봇의 합성어)라고 부르는 등 여성들에 관해 말할 때 그토록 여성을 비인간화하고 사물화하는 언어에 의존할까 (...) 그것은 여성을 비하하고 싶은 욕망과 분노가 투영된 표현이다. 인셀들은 사회적 위계를 공고히 하는 데 열정을 쏟는다. (...) 여성을 비인간을 닮은 무엇으로 암시하는 것은 궁극의 모욕 행위이다."

100여년 전 나혜석이 '여자도 사람이외다' 외쳤건만, 아직도 그 지당한 사실이 모든 이들의 인식 체계에 자리잡진 않은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여자도 사람이다' 외치지 않아도 되는 날까지, 허스토리와 함께 힘을 내보아요!

본 뉴스레터는 2022년 2월 10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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