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에서 속옷만 입은 의문의 시신 9구… 러, 비밀무기 실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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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에서 속옷만 입은 의문의 시신 9구… 러, 비밀무기 실험했나

입력
2022.02.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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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월 러시아 '디아틀로프 패스 사건'
우랄종합기술연구소 학생 등 9명 스키 원정
원정 중 폭설· 눈사태 만나 텐트에서 탈출
9명 중 5명 동사, 4명은 치명적 상해로 사망
사고 발생 배경 두고 다양한 추측 난무
러 정부 신무기 실험·외계인 공격설 등 분분
러 검찰 2020년 재수사 "눈사태로 인한 사고" 결론
검출된 방사능·잔혹한 외상·속옷 차림 의문은 여전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구소련 우랄종합기술연구소 학생 등 9명의 디아틀로프 스키 원정대가 1959년 2월 1일 눈보라를 뚫고 등반을 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공용

괴이한 죽음이었다. 스키를 타기 위해 떠났던 9명이 영하 30℃ 안팎의 설산(雪山)에서 속옷만 입고 끔찍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발견됐다. 시신은 참혹하게 훼손됐다. 1959년 1월 27일 러시아 우랄산맥 스베르들롭스크 오토르텐산으로 스키 원정을 떠난 구소련 우랄종합기술연구소(현 우랄연방대학) 등반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들 모두 젊은 스키 원정 베테랑이었다. 대장 이고르 알렉세예비치 디아틀로프(당시 23세)가 꾸린 등반대에는 디아틀로프를 비롯해 9명의 연구소 학생들이 참여했다. 뒤늦게 군인 출신 세면 알렉시비치 졸로타료프(당시 38세)가 합류했다. 이들 모두 스키 원정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은 2주 동안 약 300㎞를 횡단하기로 했다. 원정 이튿날인 1월 28일, 일행 중 유리 유딘(당시 21세)이 무릎과 관절 통증 등의 이유로 낙오했다.

나머지 9명은 산행 중 폭설을 맞았다. 눈보라에 방향을 잃고 헤매던 이들은 경사가 완만한 곳에 텐트를 치고 임시 캠프를 마련했다. 2월 1일 베이스캠프에 남았던 유딘과의 통화에서 디아틀로프 대장은 “눈보라 때문에 길을 잘못 접어들어 텐트를 치고 쉬는 중”이라고 답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1959년 러시아 수사당국이 우랄산맥 콜라트 사클산에서 발견한 '디아틀로프 스키 원정대'의 임시 캠프. 텐트가 눈 속에 파묻혀 있고, 지지대는 서 있다. 위키미디어 공용


텐트 찢고 속옷만 입고 숲으로 달아난 등반대

이후 연락이 끊긴 일행은 귀환 예정일인 2월 12일 돌아오지 않았다.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시작됐다. 수색이 시작된 지 일주일 만인 2월 26일 고도 1,096.7m의 콜라트 사클(Kholat Syakhlㆍ죽음의 산)산에서 일행의 흔적이 발견됐다. 수색대는 맨 먼저 눈에 파묻힌 텐트를 찾아냈다. 텐트의 지지대는 멀쩡했고, 내부에 있던 짐들도 눈에 쓸려가거나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텐트 내부에서 칼로 갈기갈기 찢고 나온 정황이 눈에 띄었다.

텐트 아래 방향으로는 뒤엉킨 발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신발 한 켤레만 신었거나 맨발로 추정되는 발자국들은 소나무 숲으로 향해 있었다. 수색대는 텐트에서 1.5㎞ 떨어진 숲에서 2구의 시신을 찾았다. 유리 니콜라예비치 도로셴코(당시 22세)와 게오르기 알렉세이비치 크리보니셴코(당시 24세)였다. 둘 다 맨발에 속옷 차림이었다. 도로셴코의 머리카락 일부가 불에 그을렸고, 크리보니셴코는 손과 발, 다리 등에 화상을 입었다. 둘 다 눈을 뜬 채 숨을 거뒀다.

러시아 우랄산맥 콜라트 사클산 일대에서 속옷 차림으로 발견된 유리 니콜라예비치 도로셴코와 게오르기 알렉세이비치 크리보니셴코.


1959년 1월 스키 원정을 떠났다가 사망한 '디아틀로프 스키 원정대' 9명의 시신이 발견된 러시아 우랄산맥 콜라트 사흘산 일대 소나무 숲. 위키미디어 공용

뒤이어 텐트와 숲 사이에서 디아틀로프와 지나이다 알렉세예브나 콜모고로바(당시 22세), 루스템 블라디미로비치 슬로보딘(당시 23세) 등 3명의 시신이 추가로 수습됐다. 이들 역시 속옷만 겨우 걸친 상태였으며,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았다. 비교적 시신은 온전했지만 이들 표정도 극도의 공포로 가득했다.

나머지 4명을 찾는 데는 기상악화로 두 달 이상이 걸렸다. 5월 4일 숲에서 75m가량 떨어진 계곡에서 4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들은 4m의 눈 아래 묻혀 있었고, 흐르는 계곡물에 떨어져 있었다. 외상이 심했다. 루드밀라 알렉산드로브나 두비니나(당시 21세)는 두개골이 으스러진 상태였으며, 눈과 입술, 혀 등이 잘려져 있었다. 알렉산더 세르게예비치 콜레바토프(당시 25세)도 눈 부위에 치명적인 상처가 있었다. 니콜라이 블라디미로비치티보 브리뇰(당시 24세)은 두개골이 골절됐고, 졸로타료프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흉부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채 목숨을 잃었다. 이들 중 일부는 앞서 발견된 이들의 옷을 입고 있었다.

1959년 1월 러시아 우랄산맥으로 스키 원정을 떠난 뒤 의문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디아틀로프 스키 원정대' 대원들. 한국일보 그래픽뉴스부


1959년 디아틀로프 스키 원정대는 러시아 우랄산맥 콜라트 사클산 일대 경사면에 임시텐트를 쳤다. 2020년 러시아 검찰은 재수사에서 경사면에 쌓인 눈이 텐트를 덮치면서 일행이 다급히 텐트를 찢고 대피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일보 그래픽뉴스부


비밀무기 실험? 외계인 침공?

이들의 충격적인 죽음의 배경을 두고 갖가지 추측이 쏟아졌다. 눈사태로 조난 사고를 당했다고 보기에는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해당 지역은 눈사태 등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 지역인데다, 당시 머물던 텐트도 눈사태의 피해를 입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눈사태가 일어났다면 물건뿐 아니라 시신들도 눈에 휩쓸려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스키 원정 자격증까지 보유한 이들이 아무리 급해도 속옷 차림으로 텐트 밖으로 나간 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정부의 비밀 방사능 무기 실험의 희생양이 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당시 수집된 옷가지와 시신들에서 다량의 방사능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또 시신 발견 당시 일부 시신이 변색돼 있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게다가 당시 일행 중 한 명이었던 졸라타료프가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이었다는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그럴듯한 가설이 마련됐다. 등반대 중 맨 마지막에 합류한 그는 일행 중 유일하게 30대였고, 2차 대전 참전 경험이 있었으며, 이후 행적이 모호했다. 이 때문에 그가 일행을 정부의 신무기 실험에 이용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사고 현장 인근에 관련 시설이 전혀 없는데다, 외부 침입 흔적조차 없어 무기 실험이 이뤄졌다고 보기에는 무리였다.

외계인이 일행을 공격했다는 가설도 있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레브 이바노프 수사관은 1990년 퇴직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수사과정에서 방사능 검사를 해보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그리고 시신 등에서 방사능이 많이 검출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근 지역 주민들이 사고가 발생한 시기에 상공에서 밝은 빛을 봤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외계인의 미확인비행물체(UFO) 광선에 노출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이들이 속옷 차림으로 텐트를 급히 뛰쳐나온 이유로 보기에는 어려웠다.

이 밖에 우랄산맥 일대의 소수민족인 ‘만시족’이 신성시 여기는 장소에 일행이 침범해 공격을 당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나 다 같이 독버섯을 먹은 뒤 환각에 빠졌을 것이라는 얘기나 전설 속 거인인 ‘예티’가 등장해 일행을 해쳤을 것이라는 추측 등이 난무했다.

3개월 만에 종결된 수사 결과는 의문을 되레 증폭시켰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앞서 발견된 5명의 사망 원인은 저체온증으로, 이후 발견된 4명은 치명적인 상해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 발생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살인 사건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만 결론지었다. 사건은 ‘미해결 사건’으로 분류됐고, 수사자료는 기밀에 부쳐졌다. 사건 담당 수사관들에게는 함구령이 내려졌다. ‘디아틀로프 패스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은 이후 ‘러시아 3대 미스터리’로 꼽히며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사건을 다룬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 등도 잇따라 나왔다.

1959년 1월 러시아 우랄산맥 오토르텐산 스키 원정을 가기 위한 베이스캠프에서 이고르 디아틀로프(왼쪽) 대장과 유리 유딘(가운데)과 루드밀라 알렉산드로브나 두비니나(오른쪽)가 고별을 앞두고 인사를 하고 있다. 유리 유딘은 관절 통증으로 베이스캠프에 남았다. 디아틀로프 패스 홈페이지


60년 만에 재수사… 결론은 ‘눈사태’

사건 발생 60년 만인 2019년 재수사가 시작됐다. 1년 넘게 수사를 진행한 러시아 검찰은 이듬해인 2020년 7월 “디아틀로프 사건의 발생 원인은 눈사태”라고 공식 발표했다. 검찰은 살인 가능성은 처음부터 배제했다. 검찰은 최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당시 사고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대규모 눈사태는 아니더라도 텐트 바로 윗부분 경사면에 쌓여 있던 눈이 미끄러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텐트를 덮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검찰은 잠을 자던 일행이 이를 눈사태로 오인하고, 더 큰 피해를 피하기 위해 옷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채 다급하게 텐트를 찢고 나와 숲으로 갔을 것으로 봤다. 나무들이 빽빽한 숲은 눈사태를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검찰은 숲에 도착한 일행 중 일부가 불을 피우고, 일부는 눈 동굴을 마련하려고 눈을 팠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추위에 둘이 먼저 동사(凍死)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추가 눈사태가 일어나지 않자 남은 일행 중 셋은 다시 텐트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고, 또 다른 넷은 눈 동굴을 파다가 계곡 아래로 추락해 외상을 입고 사망했을 것으로 검찰은 분석했다.

안드레이 쿠리야코프 러시아 우랄연방지부 검사가 2020년 기자회견을 열고 ‘디아틀로프 패스 사건’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CNN 캡처

재수사를 맡은 안드레이 쿠리야코프 우랄연방지부 검사는 “사건 당시 수사기록과 달리 재수사에서 시뮬레이션한 결과 텐트가 있던 현장의 경사도가 25도로 더 가팔랐고, 사고 당시 해당 지역의 눈사태 기록은 없지만 매우 강한 눈보라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쌓인 눈이 텐트 위로 미끄러지면서 생긴 사고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의 무기실험이나 외계인이나 원주민의 공격 등은 말이 안 된다고 적극 반박했다.

재수사 결과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유족 등은 당시 검출된 방사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공포스러운 표정을 남기고 처참하게 최후를 맞은 이유도 깔끔하게 해소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이 속옷 차림으로 나가면 즉사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는데도 그렇게 다급하게 나간 데 대해 눈사태가 아닌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쿠리야코프 검사는 “재수사 결과 디아틀로프 일행은 텐트를 친 지점을 잘못 선택한 것 외에는 모두 눈사태에 대비한 교과서적인 행동이었다”며 “만일 그들이 전문가가 아니었다면 옷을 다 챙겨 입고 텐트 근처에서 어떻게든 버텼겠지만 이들은 대피 정석대로 숲으로 대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극적이게도 그들의 전문성이 그들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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