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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무혐의' 블록체인 개발 사기범…엔지니어 출신 검사에 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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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무혐의' 블록체인 개발 사기범…엔지니어 출신 검사에 덜미

입력
2022.02.03 04:45
수정
2022.02.03 17:1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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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소스 구입" 명목 비트코인 57개 빼돌려
특경법상 사기… 당시 8억 상당, 현 시세 27억 달해
"소스 구매해 제공" 피의자 주장에 무혐의 낸 경찰
공대 출신 검사 추적… '무료 오픈소스 짜깁기' 들통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가상화폐 열풍을 등에 업고 블록체인 전문가 행세를 하며 사업가들에게 접근해 수십억 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40대 남성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경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법망을 빠져나갈 뻔했지만, 피해자의 이의신청으로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결국 덜미가 잡혔다.

2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서울동부지검 사이버범죄형사부(부장 이성범)는 지난달 27일 블록체인 개발자 A(49)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앞서 서울 송파경찰서는 2020년 12월 A씨에 대한 고소장 접수로 수사에 나섰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처분했다.

A씨는 2019년 2월 가상화폐를 활용해 '판타지 스포츠' 게임 플랫폼을 개발하려는 사업가 B씨에게 접근해 '블록체인 개발 전문가' 행세를 하며 투자를 권유했다. 다른 회사에도 유사한 기술을 개발해줬다며 허위 경력을 내세우는가 하면, 수백억 원의 현금이 발견돼 화제를 모았던 '김제 마늘밭 사건' 불법 도박 게임도 자신이 개발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A씨는 B씨 회사에 기술담당이사(CTO)로 영입된 뒤 '개발에 진척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같은 해 5월 "내가 개발한 다른 회사 프로그램 소스를 구입하면 개발 시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데,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B씨를 속였다. A씨는 당시 8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 57개를 B씨로부터 챙긴 뒤 허위 프로그램 소스를 제공하고 잠적해 버렸다. A씨가 편취했던 비트코인 57개는 이날 오전 기준으로 27억여 원에 달한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설치된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배우한 기자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설치된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배우한 기자

경찰은 그러나 지난해 8월 A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무혐의 통지서에서 "A씨가 B씨에게 게임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프로그램 소스를 제공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못한 책임이 전적으로 A씨에게 있어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전 직장과의 계약이 불발돼 해외 유명 개발자로부터 프로그램 소스를 사왔다"는 A씨 주장을 경찰이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A씨가 비트코인 57개를 들여 사왔다는 프로그램 소스는 해외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되는 오픈소스로, B씨 회사의 프로그램 개발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A씨 사건을 맡은 주임 검사는 명문대 컴퓨터공학부 석사이자 글로벌 IT회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이었고,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검사는 A씨가 제시한 프로그램 소스에 의문을 품었다. 검찰은 지난달 초 A씨의 주거지 PC와 휴대폰, 이메일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사는 사이버 범죄 전문 수사관들과 함께 프로그램 소스를 분석해, A씨가 짜깁기한 코드들의 출처를 규명해 사기 혐의를 밝혀냈다. 가상화폐 입출금 경로 추적 결과, A씨가 프로그램 소스 구입 대금 명목으로 받은 비트코인 가운데 일부를 사적으로 사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증거인멸·조작 정황도 포착되면서 법원은 지난달 20일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A씨가 애초에 프로그램을 개발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었음에도 B씨를 속여 가상화폐를 편취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피해 보전을 위해 A씨의 가상화폐 일부를 압수한 상태다.

A씨의 사기 행각은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그는 메이저 거래소에 상장한다고 피해자들을 속여 다단계로 코인을 발행하는 수법으로 현금 35억 원에 이더리움 1,790여 개(시가 5억 원)를 횡령한 혐의 등으로 다른 검찰청에서도 수사를 받고 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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