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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정치의 종언을 위하여

입력
2022.01.27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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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文 정권을 이끈 사실상 주역은 문파
극단적 팬덤 정치는 필히 실패 귀결
비판적 지지로 정상 정치문화 복구를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며 극상의 헌사를 올린 게 불과 1년 전이다. 덧붙여 여당 대선후보들이 누가 더 친문이며 계승자인지를 놓고 다투던 것이 겨우 두어 달 전이다. 정작 지금은 여당 대선후보가 현 정권과의 차별화에 사활을 걸었다. 당 대표는 아예 ‘친문 배제’가 진짜 정권교체라고 강변한다. 20년, 백년 집권론 따위의 자신감은 없어졌다. ‘정권 재창출’은 오히려 금기어가 되고 야릇한 ‘정치교체론’으로 대체됐다.

짧은 시간에 이토록 극적인 반전이라니. 정치인들의 얕은 처신과 무상한 세태만 개탄할 건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극단적 팬덤 정치의 당연하고도 허망한 결말이다. 첫 ‘정치빠’라고 할 만한 박사모의 극렬함이 끝내 박근혜를 망쳤듯 문파도 별반 다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문파는 정치적 영향력 측면에서 박사모와는 차원이 달랐다. 엄청나게 집단적이고 집요한 활동성, 지독한 배타성, 어떤 비판도 용납지 않는 경직성, 폭발적인 공격성 등으로 지난 5년간 한국정치를 중심에서 이끌었다. 여당 중진들의 저 낯 뜨거운 행태들도 정확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문파 집단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제야 뒤늦은 반성이 나오지만 이 정권에서 586의 이념적 오만을 극대화한 것도 따지고 보면 문파 그룹의 맹목 지지였다.

역설적으로 추앙 대상인 문 대통령도 그들에게 포획돼 운신의 여지를 잃었다. 정권평가의 분기점이었던 조국 사태에서 끝내 유연성을 보이지 못한 것이 열성 지지자들의 판단을 거스를 수 없어서였다는 분석도 있었다. 여간해선 정책적 오류를 인정하지 않은 것도 아니, 할 수 없던 것도 문의 정책에 무조건적인 정당성을 부여한 문파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권에서 합리적 정치인들이 성장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초 이낙연 총리가 총대를 멘 사면파동을 돌이켜보라. 열성 지지자들의 반응에 놀란 문이 뒤로 숨고 그가 대신 표적이 되면서 결정적으로 경선에서 밀려났다. 윤석열의 자질로 보아 그때 결함 많은 이재명보다 이낙연이 선택됐으면 여당 대선가도는 훨씬 안전하고 수월했을 터였다. 그러므로 책임의 상당 부분은 그들에게 있다.

개인적 정치성향에 따른 팬덤은 자연스럽지만 그 원칙은 비판적 지지다. 합리적 가치공유의 관계가 아닌 ‘닥치고 지지’ 관계에서 이성적 판단이 작동할 여지는 없다. 활동이 주로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책임지지 않는 극단주의로의 이행은 필연적이다. 확장성을 차단한 극단주의는 선거 향방을 가를 온건중도층을 내쫓는 결과가 됐다. 윤석열에게서 어떤 문제가 불거지든 정권교체 정서가 절반을 훨씬 넘는 선에서 꿈쩍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중도층의 깊은 혐오나 염증이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는 수치다. 아직도 대선 결과를 예단할 시점은 아니나 여권 입장에서 점점 녹록지 않은 상황으로 가고 있음은 부인키 어렵다.

그러므로 정치팬덤이라는 게 자기충족적 이기(利己)에 지나지 않는 허상이라는 점을 이제라도 깨달을 일이다. 무엇보다 최장집 홍세화 같은 합리적 진보인사들도 지적하듯 이런 정치문화는 애당초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오해는 말기 바란다. 특정 정파의 유불리를 염두에 둔 글도 아닐뿐더러 여야 지지층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다만 건강한 정치발전, 국가발전을 위한 제언이다.

그렇게 해서 이번 대선이 비합리적 정치팬덤, 비정상적 정치빠 문화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다 성에 차지 않는 후보를 골라야 하는 이 난장판에서 그나마 건질 게 하나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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