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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아흔에 소설 낸 장충식 단국대 전 이사장 "앞으로 두 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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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아흔에 소설 낸 장충식 단국대 전 이사장 "앞으로 두 권 더..."

입력
2022.01.28 16:40
수정
2022.01.28 16:4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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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눈물' 출간… 좌우명 '억강부약'
진정한 사랑 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
"우린 인간에 대한 애정 잃지 말아야"
"다음 작품 주인공은 수녀와 범죄자"

장충식 단국대 전 이사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최근 출간한 소설 '눈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망백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기억력과 언변에는 거침이 없었다. 단국대 제공

장충식 단국대 전 이사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최근 출간한 소설 '눈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망백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기억력과 언변에는 거침이 없었다. 단국대 제공

“최고령 ‘수상’은 들어봤지만…”

지난달 소설 '눈물'을 출간한 장충식(89) 단국대 역사문화원장은 마음만은 문학청년이다. 1932년 7월생이니 만 90세에 딱 7개월 모자라는 나이다. 국내 출판협회 등에 공식기록은 없지만, 최고령 소설 ‘출간’일 가능성이 높다.

27일 경기 용인 단국대에서 만난 그는 “기록에는 관심이 없다”면서도 “사는 동안에는 계속 쓰고 싶다”며 출간에 의욕을 보였다. 소설 ‘눈물’은 사랑하는 여인의 잇따른 죽음 속에서도 운명을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 그의 세 번째 소설이다. 장 원장은 “앞으로 두 권을 추가해서 내 생애 다섯 권은 채울 수 있을 것 같다”며 “현재 수녀와 범죄자가 등장하는 글을 쓰기 위해 인터뷰이를 섭외 중”이라고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그지만, 그가 인생 그늘막에서도 출간에 욕심을 내는 것은 60년을 교육자로 살면서 느낀 의무감 때문이다. “살면서 접한 선택의 고비마다 ‘억강부약(抑强扶弱ㆍ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다)’을 좌우명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그게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죠. 어쩌면 지금 소설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몰라요.”

그의 첫 소설(그래도 강물은 흐른다)은 2003년에 나왔다. 칠순을 바라보던 때다. 부친인 독립운동가 범정 장형(1889~1964) 선생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미국 유학 중 30대 나이로 단국대 초대 총장에 오른 장 원장은 글 쓸 여유를 갖지 못했다. 서울대 재학시절 럭비 선수를 하면서도 한국ㆍ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한 그였지만, 첫 소설이 그토록 늦었던 데에는 박정희 때 주간부 폐쇄 및 고문 피해, 김영삼 때 캠퍼스 이전 등 고초를 겪는 등 정권과의 불화 탓도 있었다.

총장을 맡고선 학교 일을 최우선에 둘 수밖에 없었던 처지도 이유라면 이유. 그는 “종합대 승격, 천안캠퍼스 의대 신설, 죽전캠퍼스 이전 같은 학교 일, 남북체육회담과 세계청소년축구 남북단일팀, 남북이산가족상봉단 단장으로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며 “그렇게 정관계 일을 매듭짓고서야 여유가 찾아왔다”고 했다.

꿈은 담아 둔다고 녹지는 않는 법. 광복, 남북 분단, 6ㆍ25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변기 한 가정의 고난을 다룬, 다섯 권짜리 첫 소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를 세상에 내놓자, 당시 조정래 선생이 “양을 좀 더 늘려 대하소설로 가라”고 했을 정도. 2019년엔 두 번째 소설 '아름다운 인연'이 나왔고, 그 책은 영어와 스페인어로도 번역 출간됐다. 대부분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향하는 글이었다.

이는 그가 교수, 총장, 이사장 등 교육 현장에 있었을 때와 다르지 않다. “소외되거나 재능이 있어도 여건이 나빠 기회를 잡지 못한 젊은이들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학생도 성적보다는 가정형편을 주로 보고 뽑았죠.” 서울대에서 제적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단국대 졸업생인 것도 그의 그런 생각 덕분이다.

이런 장 원장에게 돈을 탐하는 요즘 지도자들은 ‘퇴학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폭등한 주택값 관련, 그는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사재는 학교에 다 기부한다’는 선친의 선언에 결혼하고도 8년 동안 전월세를 전전했던 그다. 어디 그뿐인가. “선친이 하루는 백건우가 피아노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손녀(장 원장의 딸)의 피아노를 빼앗다시피 해서 주더라고요.”

아버지 입장에선 섭섭했을 법도 한 일. 그러나 그는 딱 잘랐다. “그 정신만큼은 가슴에 나침반으로 남아 있어요.” 힘든 시절이었어도 방향만 잡고 있으니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슴속에 학도병 시절 사진을 늘 갖고 다니는 그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한마디 풀었다. “어려울수록 꿈을 더 크게 키우고 멀리, 길게 봐야 합니다. 지나고 보면 지금의 추운 시간이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망백(望百)을 바라보고 있는 문청의 조언이다.

이범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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