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해군총감, 푸틴 두둔 발언으로 사임
中, 독설 퍼부으며 기다렸다는 듯 공세
‘중국 위협론’, ‘반중 선봉’에 앙금 쌓여
남중국해로 20년 만에 獨 군함 투입도
메르켈 물러나자 관계 서먹해진 中-獨
독일 해군 1인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둔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사임했다. 이를 놓고 제3자인 중국이 오히려 당사자를 비난하며 열을 올리고 있다. 앓던 이가 빠진 듯 고소하다는 뉘앙스로 그간 묵혔던 앙금을 쏟아내는 분위기다. 중국과 독일이 깊은 우호관계를 유지하던 앙겔라 메르켈 정부 때는 볼 수 없던 모습이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앞서 22일(현지시간) 독일 해군총감 카이아힘 쇤바흐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퇴했다고 전했다. 쇤바흐는 전날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동등하게 존중받고 싶어한다”며 “나라면 존중을 좀 해줄 것 같다. 그는 존중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그런데 돌연 중국이 끼어들었다. 환구시보 등 매체들은 쇤바흐 사임 다음 날부터 “중국에 독설을 퍼붓다가 쫓겨났다”, “싸움을 부추긴 운수 사나운 해군 지휘관” 등 거친 언사를 퍼부었다. 마치 그가 물러나길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몰아세웠다.
중국은 쇤바흐가 왜 문제인지 조목조목 지적했다. 쇤바흐가 지난해 초 해군총감 취임 직후부터 ‘중국 위협론’을 역설했고, 중국과 아프리카의 협력관계를 조롱하며 ‘반중’ 여론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쇤바흐는 지난달 “중국 해군력의 폭발적 확장이 우려된다”면서 “이는 4년마다 프랑스 해군을 한 개씩 늘리는 것과 같다”고 재차 중국을 자극했다. 당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터무니없는 과장이자 노골적 이간질”이라고 맞받아쳤다.
무엇보다 중국이 불쾌한 건 독일 군함이 2002년 이래 20년 만에 남중국해에 진입한 일이다. 지난해 8월 출항한 3,600톤급 호위함 바이에른호는 6개월 일정으로 호주, 싱가포르, 일본, 한국을 들르며 미군과도 연합훈련을 펼쳤다. 12월에는 중국이 영해로 주장하는 민감수역 남중국해에 진입했다.
독일은 9월 바이에른호의 상하이 기항을 요청하며 중국에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 하지만 이미 부아가 치밀은 중국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럼에도 쇤바흐는 바이에른호가 일본 해상자위대와 연합훈련에 나서자 “독일 해군을 앞으로 인도ㆍ태평양지역에 자주 보낼 것”이라며 중국의 화를 돋웠다. 중국청년망 등은 “쇤바흐가 해군 최고지휘관을 맡기 전에는 없던 도발”이라고 쏘아댔다.
이처럼 중국이 뒤늦게나마 분풀이에 나선 이면에는 메르켈 총리 퇴임 이후 독일과의 관계가 이전 같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독일에는 중국 기업 2,000개, 중국에는 독일 기업 7,000개가 진출해 있어 양국의 경제협력은 끈끈할 수밖에 없다. 다만 2020년 12월 중국과 유럽연합(EU)이 체결한 ‘포괄적투자협정(CAI)’ 비준이 늦어지면서 중국은 애가 타는 기색이 역력하다. EU의 리더인 독일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라고 있지만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리커창 총리가 17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통화에서 “EU와의 관계 개선에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심지어 독일 외교와 스포츠 담당 장관들은 내달 열리는 베이징올림픽에 불참하겠다며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다. 중국으로서는 유럽의 ‘믿을맨’ 독일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재임 16년간 12차례나 중국을 방문하며 애정을 듬뿍 쏟아낸 메르켈 전 총리 재임 시절과는 양국의 기류가 사뭇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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