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막 올린 연극 '메이드 인 세운상가'
차근호 작가·최원종 연출 인터뷰
'근현대사 재조명 프로젝트' 6번째 작품
'그때 그 시절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가면 탱크도 만들 수 있었다.' 내로라하는 기술자가 이 상가 주변으로 모여들던 것은 사실이지만, 누가 들어도 허풍 같은 이 말에서 한 연극이 시작됐다. 1986년 북한의 수공으로 '88 서울올림픽'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정부 발표에 상인들이 진짜 잠수함을 만들어 맞서겠다고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21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메이드 인 세운상가'의 차근호 작가는 2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운상가에서는 뭐든지 만들 수 있다는 도시 전설과 같은 얘기를 항상 생각하고 있던 차에, 금강산댐과 엮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바로 작품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금강산댐은 전두환 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이용했던 카드로, 시대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소재다. 당시 북한 금강산댐 건설의 위협을 과장해 국민 불안감을 조성한 정부는 대응 명목으로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대국민 성금을 모으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써 내려간 그의 대본은 불편한 진실로 가득 차 있다. 반공에 목숨을 건 불법 포르노 극장주인 차석만이 자신의 명예욕을 채우려 잠수함 제작을 제안하고, 이후 각종 공업 기술을 가진 상인들이 합류해 잠수함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 등이 드러난다. 아직도 해소되지 못한 우리 역사의 아픈 구석도 보인다. 차 작가는 "'거짓도 반복되면 진실이 된다'는 대사를 통해 극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본을 받아든 최원종 연출의 고민은 단 하나였다.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어떻게 관객에게 납득시킬 것인가.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잠수함 제작 여부에 관한 논의를 지켜보던 관객이 '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야 극이 진실성을 갖게 된다"면서 "그래서 각기 다른 이유로 동참을 결정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용산전자상가가 생겨나면서 위기를 느끼는 세운상가 상인의 기술적 자부심과 허세, 내 재산을 지키려는 의지, 그리고 무리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은 마음 등을 세밀하게 그려낸 덕에 황당한 논의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던 관객도 어느 순간 극에 몰입하게 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지원사업인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인 연극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두 콤비가 2018년부터 만들어 온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근현대사 재조명 프로젝트' 여섯 번째 작품이다. 특히 차 작가는 전작인 '타자기 치는 남자'로 지난해 제29회 대산문학상 희곡부문에서 수상했다. 두 사람은 이 작품을 오는 5월 서울연극제에서 다시 한번 선보인다. 모두 딜레마 속 소시민의 모습을 통해 나와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30일까지 공연하는 이번 작품 이후에도 신작 세 작품을 더 선보일 예정이다. 차 작가는 "국공립도 아니고 작은 규모의 민간 극단이 연작 프로젝트를 끌고 가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면서도 "창작산실 같은 지원 사업 덕분에 여기까지 왔고, 남은 세 작품도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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