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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 LP 구매에 5시간 대기... 아날로그의 부활일까 거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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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 LP 구매에 5시간 대기... 아날로그의 부활일까 거품일까

입력
2022.01.25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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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오토그래프컬렉션 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방문자들이 바이닐 음반(LP)을 보고 있다. 서울레코드페어 제공

22일 서울 마포구 라이즈오토그래프컬렉션 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방문자들이 바이닐 음반(LP)을 보고 있다. 서울레코드페어 제공

22일 오전 7시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라이즈오토그래프컬렉션호텔 뒤편에서 대로변으로 100여 명이 일렬로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3시간이 지나자 이 줄은 호텔이 있는 블록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휘감을 정도로 늘었고 대기 인원도 500명을 넘어섰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 속에서 길 위에 서 있는 이들은 이날 열리는 제10회 서울레코드페어 입장 번호를 받으려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오전 9시 반쯤 도착해 2시간을 기다려 400번대의 번호를 받고 다시 3시간을 더 기다려 음반을 샀다는 30대 회사원 박종현씨는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발매되는 이랑, 김일두, 클래지콰이 등의 바이닐(LP 레코드)을 사기 위해 왔다”면서 “이전에도 페어에 몇 번 온 적이 있는데 한정판 LP 구매 경쟁은 이번이 가장 치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서울레코드페어는 국내 LP 시장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행사였다. 페어에선 K팝 걸그룹 오마이걸을 비롯해 인디 싱어송라이터 이랑, 그룹 클래지콰이, 불독맨션, 최백호 등의 바이닐 음반이 처음 공개됐고 수십 개의 부스에서 국내외 새 LP, 중고 LP, 카세트 테이프, 콤팩트 디스크(CD), 바이닐을 재생할 수 있는 턴테이블 등이 판매됐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넘게 페어가 열리지 못하는 사이 행사장 규모가 줄고 일정도 이틀에서 하루로 단축됐지만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주최 측은 이날 행사에 7,000여 명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레코드페어를 이끄는 김영혁 김밥레코즈 대표는 “페어 한정 판매 바이닐과 페어에서 처음 선보이는 바이닐 모두 행사 종료 후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어 대기 인원이 이렇게 많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코로나19로 소비할 대상이 줄어들면서 바이닐 소비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마포구 무신사테라스에서 열린 제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참가자가 바이닐 음반(LP)을 재생해 들어보고 있다. 서울레코드페어 제공

22일 서울 마포구 무신사테라스에서 열린 제10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참가자가 바이닐 음반(LP)을 재생해 들어보고 있다. 서울레코드페어 제공

페어에선 LP 시장의 붐을 이끄는 소비자가 2030세대라는 걸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방문객이 몰렸지만 주를 이루는 건 청년층이었다. 페어에 판매자로 참여한 레코드숍 핑크판스의 김지훈 대표는 “지난 2, 3년간 국내 LP 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는데 전체적으로 LP 발매 수량이 크게 늘었고 젊은 소비자들의 LP 구매가 크게 늘었다”며 “페어 현장에서 이러한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하게 LP를 생산하는 마장뮤직앤픽처스의 하종욱 대표는 "공장 문을 연 2017년만 해도 연간 제작 수량이 2만 장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20만 장으로 늘었고 그마저도 6개월 정도가 밀려 있다"며 "시장의 양적 성장은 물론 제작되는 LP의 음악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질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LP 붐은 국내에 국한하지 않는다. 미국은 지난해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LP 판매량이 CD 판매량을 앞질렀다. 미국 음반 판매를 집계하는 MRC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LP 판매량은 4,172만 장으로 전년 대비 50% 이상 늘었다.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30만 장을 팔아 치운 아델을 필두로 테일러 스위프트,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 젊은 가수들이 비틀스, 퀸, 마이클 잭슨 등의 스테디셀러 음반을 끌어내리며 상위권에 오른 결과다.

국내에선 인디 음악가들의 신보와 1970~1980년대 앨범의 재발매를 중심으로 출시되던 바이닐 음반이 최근 들어선 K팝과 기존 인기 가수들로 확장하는 분위기다. 블랙핑크는 2020년 정규 앨범 ‘디 앨범’의 LP 1만8,888장을 순식간에 매진시켰고, 지난 17일 예약 판매를 시작한 성시경의 정규 8집 ‘ㅅ’ 한정판 LP 5,000장은 1시간도 안 돼 품절됐다.

갑작스레 늘고 있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한정돼 있다 보니 판매 개시와 함께 제품이 품절되고 즉시 비싼 가격에 재판매되는 비정상적인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성시경의 ‘ㅅ’ LP는 아직 발매되기도 전인데 중고 거래 사이트에선 판매가(약 6만 원)의 2배에 이르는 가격을 부르는 리셀러(재판매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레코드페어에서 공개한 한정판 역시 행사 종료 후 속속 중고 거래 사이트·애플리케이션에 매물이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 포털사이트의 중고 거래 카페에 올라온 가수 성시경의 8집 'ㅅ' LP 판매 글. 예약 판매를 시작한 지 1시간도 안 돼 매진된 이 앨범은 애초에 6만 원대에 판매됐다. 포털사이트 캡처

한 포털사이트의 중고 거래 카페에 올라온 가수 성시경의 8집 'ㅅ' LP 판매 글. 예약 판매를 시작한 지 1시간도 안 돼 매진된 이 앨범은 애초에 6만 원대에 판매됐다. 포털사이트 캡처

업계 관계자들도 최근 LP 시장의 호황에는 약간의 거품이 끼어 있다고 본다. 김영혁 대표는 “이전에는 LP를 내지 않던 유명 가수들이 LP를 내면서 팬들의 관심이 높아진 측면도 있지만 대부분 한정된 수량을 판매하다 보니 빨리 사지 않으면 사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구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여기에 리셀러까지 합세하면서 거품이 낀 상태”라며 “팬데믹 이후에도 시장이 계속 커질지 아닐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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