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50년 만에 군납 방식 변경
경쟁입찰 확대로 대기업 참여 가능
접경지 농민 "국방부, 상생 외면" 반발
정치권 "정부 차원 상생 방안 내놔야"
일선 군(軍) 부대에서 쓸 식자재 등을 공급하는 군납방식 변경을 둘러싼 갈등이 해를 넘겨서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 강원 화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국방부가 군부대 농산물 납품에 경쟁 입찰을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자 농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급기야 전국 군납조합을 비롯한 농어민들이 지난 21일 정부 세종청사에 모여 국방부와 정부를 성토했다. 양측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중앙정부나 정치권이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 50년 만에 경쟁입찰 도입
갈등은 국방부가 지난 여름 단계적으로 식자재 납품을 경쟁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기존 농축수협과의 수의계약을 2024년까지 유지하되, 올해 30%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수의계약을 줄여 2025년엔 경쟁조달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게 국방부 입장이다. 부실급식 논란이 불거지자 장병들의 입맛과 수요를 맞추겠다며 50년을 이어온 군납제도에 손을 댄 것이다. 다양한 양질의 재료를 보다 효율적으로 조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대기업도 군납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관련 업계에선 당시 "국방부가 부실급식으로 추락한 신뢰회복을 위해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제도 개선에 나섰다"는 반응을 내놨다.
반세기 만의 군납방식 변경을 놓고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 등 시민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20대 장병들을 위해 시대흐름에 맞춰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과 군납 농가가 부실 식자재를 공급한 것도 아닌데, 책임을 묻는 듯한 모양새로 보인다는 지적이 공존했다.
최근 화천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국방부는 "경쟁체제 도입으로 다양한 공급자가 군 급식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며 "화천산 농산물이 신선도, 단가 등 조건에 부합한다면 식재료 선택권을 가진 군부대에선 당연히 우선순위에 따라 구매하게 되는 만큼 결코 기존 군납농가들을 배제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방부의 해명에도 성난 농심은 장외집회를 열었다.
각종 규제로 군 부대 농산물 납품이 지역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강원 접경지역의 반발이 가장 거세다. 강원지역에선 지난 2020년 기준으로 19개 농축수협이 3만2,000톤의 식재료와 우유를 일선 군 부대에 납품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1,640억 원 규모다.
아무런 대안 없이 경쟁입찰이 도입되면 가격경쟁력에서 앞선 대기업과 수입 농산물에 판로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화천읍 군납농가인 김모(67)씨는 "경쟁입찰로 전환하게 되면 품질보다는 가격이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다"며 "1원 이라도 싸게 납품이 가능한 대기업만 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군 부대가 김치를 완제품으로 공급받게 되면, 기존 배추와 무, 양념채소류를 납품하는 농가는 판로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농민들의 얘기다. 그렇다고 김치를 직접 만들기엔 기업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춘천철원화천양구축협은 "축산물의도 마찬가지로 지난해 육군 모 사단 식재료 입찰에서 스페인과 미국, 프랑스산 돼지고기가 등장하는 등 저가경쟁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일선 농가에선 국방부의 경쟁입찰 도입이 '국가는 접경지역 안에서 생산되는 농축수산물을 우선하여 군부대에 납품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접경지역지원특별법(제25조)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군 당국이 저지른 불량급식의 책임을 식자재 납품 농가에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크다. 이중호(67) 춘천철원화천양구축협 조합장은 "부실급식 문제는 공급자의 책임이 아닌 내부 시스템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식자재 유통센터, 대안될까
국방부와 군납농가의 입장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가운데 최근 강원도가 중재안을 내놨다.
도는 접경지역 로컬푸드를 군 부대에 공급하기 위한 식자재 유통센터 건립을 양측에 제안했다. 학교급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질 높은 지역 농산물을 공급하자는 것이다. 군납농가와 군 당국, 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모니터링단을 운영하자는 제안도 했다.
정치권에선 농가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인 만큼, 현실적인 대안을 주문하고 나섰다. 일각에선 대선 후보들이 이 문제에 대한 얘기를 듣고 함께 고민해 주길 바란다는 바람도 내놓는다. 한기호(강원 춘천시·철원·화천·양구군을) 국회의원과 최문순 화천군수는 "하루 빨리 중앙부처가 현실적인 대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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