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전차선 노동자다. 열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차선을 시공, 유지, 보수하는 일을 한다. 지난해 6월부터 전기업체 GS네오텍과 근로계약을 맺고 국가철도공단이 발주한 공사 현장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A씨는 GS네오텍 소속인 김모씨 계좌로 매달 일정 금액을 환급해야 했다. 지난해 10월 급여는 730만 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210만 원을 김씨에게 되돌려줬다. 함께 채용된 10여 명의 동료들도 모두 같은 상황이었다. A씨가 환급액이 너무 많다고 항의하자 김씨는 "원래 이런 식으로 해왔고, 계약할 때도 동의한 바 아니냐"고 했다. 이후 A씨는 계약이 해지됐다.
통상 하청업체는 소속 직원에게 월급을 줄 때 도급 비용을 미리 공제한다. 월급을 준 후에 특정 직원 계좌로 도급 대금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다. 전차선지부는 21일 세종시에서 GS네오텍과 김씨는 물론, '전차왕'이라 불린다는 박모씨까지 고용노동부에 고소·고발했다고 밝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전차선지부에 따르면, 김씨는 원래 GS네오텍 소속이 아니다. 공사를 낙찰받은 GS네오텍이 김씨를 채용했다. 김씨는 다시 자신이 전차선 근로자를 채용했다. A씨 등 10여 명은 김씨를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이흥석 전차선지부 사무국장은 "시공능력이 없이 입찰에 참가해 낙찰받은 GS네오텍이 김씨에게 다시 공사를 넘긴 셈"이라 주장했다. 이런 방식을 택한 건 전기공사는 재하도급이 금지돼서다. 업체에다 재하도급을 줄 수 없으니, 김씨를 직원으로 채용하고 김씨에게 인력과 공사 전반을 떠맡긴 것이다. A씨 등이 받은 임금의 30%는 그 대가다.
이런 관행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예전엔 전기업체들마다 자체 인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는데, 외환위기 이후 일용직으로 바뀌었다. 이 일용직을 관리하고 공사를 진행할, 김씨 같은 사람이 활동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전차선지부는 그중에 가장 큰 인물을 전차왕 박씨라 본다.
전기업체를 다니던 박씨는 20여년 전 퇴사한 후 하도급 업체를 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공사를 따내기도 하고, 다른 업체의 공사를 대신 맡는 식으로 영향력을 키워왔다. 김씨 또한 박씨 회사의 직원으로 알려졌다.
10년 넘게 전차선 업무를 해온 한 노동자는 "전차선 노동자가 전국에 350명 정도 되는데, 대부분 박씨 업체와 일을 한 경험이 있고 불법으로 하도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박씨가 공사를 거의 독식하고 있어 일이 끊길까봐 아무도 문제제기를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법률원 김세정 노무사는 "재하도급을 금지한 전기공사업법을 위반한 것은 물론이고,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의 중간착취 배제 조항도 정면으로 위반한 사건"이라며 "철도공단에도 사업장 근로감독 청원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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