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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건물, 아직 사람이 있다

입력
2022.01.20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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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열흘, 본격 수색 시작도 못 해
어려움 감안하더라도 이게 최선인가
국가가 자원 총동원해 수습하기를

광주 신축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인근에 실종자의 빠른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광주=연합뉴스

광주 신축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인근에 실종자의 빠른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광주=연합뉴스

열흘째다. 11일 광주에서 건설 중 무너진 아파트에 5명이 갇혀 있다. 17일 만에 생환한 삼풍백화점의 기적을 떠올린다면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 오직 구조대가 올 것이란 희망만으로 버티고 있을지 모른다. 기적을 간절히 바라는 가족들에겐 영겁과도 같은 시간일 터다. 그러나 세상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10일간 수색작업은 실종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층부에 발조차 디디지 못했다. 기울어진 타워크레인이 무너질 위험 때문이다. 여태 준비작업을 한 끝에 20일에야 타워크레인 해체가 시작됐다. 5명의 사람이 아직 거기에 있다. 이런 수습이 정말 최선인지 의심스럽다.

구조대와 해체 작업자의 안전을 고려해야 마땅하고 그들의 수고를 이해하지만, 나는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과 우리나라의 대응 능력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타워크레인을 해체할 뾰족한 방법을 못 찾고 있다는데, 100층 넘는 빌딩을 짓고 10㎞ 넘는 다리를 놓는 기업과 기술자들을 총동원한다면 왜 방법이 없겠나. 실종자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다른 수색방법을 찾아보는 건 왜 불가능한가. 2019년 강원 고성군에서 대형 산불이 났을 때 전국에서 800여 대의 소방차가 달려와 5일 만에 진압한 나라다. 2020년 대구에서 코로나19가 집단 발발했을 때 전국의 의료진이 앞다퉈 달려오고 드라이브 스루 검사 같은 아이디어가 속출했던 나라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일 것이다. 공사 중 사람 죽는 게 하루 이틀이냐는 둔감함이 있었을 것이다. 국가적 재난은 아니라고 넘겼을 만하다. 막장 드라마 못지않은 말초적 대선 정국에 빠져 무고하게 매몰된 목숨에 채 관심이 미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며칠을 고민하다 이제서야 이 글을 쓰는 내가 그랬다.

실종자 가족들이 “차라리 내가 찾겠다” “분신이라도 해야 움직일 거냐”고 발을 구를 때 이렇게 느긋해서는 안 되었다. “우리에게, 아빠에게 시간이 생명인데 마냥 기다리는 이 상황이 지옥 같다”고 했을 때 한 뼘의 관심이라도 기울였어야 했다. 그들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에게 “피가 마른다. 살아계시면 어떡하냐. 허송세월 일주일이 다 갔다”고 호소했다. 광주시장과 서구청장을 향해선 이렇게 말했다. “자기 가족이 실종됐다면 이렇게 방치 안 한다.”

인내가 바닥난 가족들은 19일 “현대산업개발과 광주시가 시간만 끌고 있다”며 “정부가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정의당은 심상정 대선 후보가 현장을 찾은 후 18일 “붕괴사고 현장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피해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자. 시공사와 지자체에 미룬 채 뒷짐 지지 말고 국가가 나서도록 하자. 정부가 이 사고를 중한 재난으로 여기고, 우리 사회가 보유한 최고의 인력과 장비와 기술을 동원하도록 하자. 국토교통부가 사고 대응 책임을 차관으로 격상하고 합동수사본부가 벌써 10명을 입건하는 그런 의지와 신속함을 사람 찾는 데에 우선 발휘하도록 하자.

세월호 참사가 비극을 넘어 한으로 남은 이유는 우리 사회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은 헛되지 않다. 최선을 다하고도 구하지 못한 세상에서는 살 수 있지만, 손익이나 무관심 때문에 구하지 않은 세상은 견디기 어렵다. 붕괴 현장은 여전히 위험하고 춥다. 하지만 국가가 이를 중대한 위기라고 진단하고 자원을 동원한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나은 대응을 할 수 있다. 지금이 그렇게 해야 할 때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한다. 너무 늦은 글이어서 죄송하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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