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순금ㆍ하창수 소설가 부부
30년간 소설가의 아내로 살았다. 집에 오는 손님들은 전부 글쟁이였다. 가슴속에 작은 방 한 칸을 만들어두고 거기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숨겨두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마음을 꺼내 빛을 쬐어주었고, 그렇게 30년 만에 ‘소설가 아내’가 아닌 ‘소설가’가 됐다.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자인 남궁순금(61)씨는 1987년 문예중앙으로 데뷔해 1991년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하창수 소설가의 아내다. 전년도인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인 강보라·박세회 작가에 이어 2년 연속 ‘소설가 부부’가 탄생한 것이다. 17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남궁순금·하창수씨는 “이제 역할이 뒤바뀌었다”며 웃었다.
소설가의 아내로 살다 보니 소설을 쓰고 싶어진 것은 아니었고, 문학은 본래 남궁씨의 꿈이기도 했다. 춘천에서 백일장을 휩쓸던 문학소녀였고 당시 최인훈 작가가 교수로 있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신경숙 소설가, 장석남 시인 등이 같이 학교를 다닌 동기다. 대학을 졸업한 뒤 MBC 구성 작가로 취직했고 일하다가 남편인 하씨를 만났다. 둘을 이어준 것도 ‘문학’이었다.
“남편의 문예중앙 당선작이 너무 좋아서 온통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선배가 하창수 소설가를 인터뷰하러 갈 건데 따라올래 해서 냉큼 따라갔다 서로 반했죠.”(순금)
“그때 저는 데뷔한 지 3년 정도밖에 안 된 소설가였으니까요. 누가 내 작품이 좋다고 해주니 저도 좋더군요. 1990년 4월 4일에 만나서 9월 29일에 결혼을 했어요. 장거리 연애라 전화비가 28만 원이나 나오길래, 어쩔 수 없었죠.”(창수)
결혼을 하고 남궁씨의 고향인 춘천으로 함께 내려갔다. 곧 아이가 태어났다. 남궁씨는 몇 년간 육아와 살림에만 몰두하다 한국여성민우회 춘천 지부 상임대표를 맡으며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이후 20년을 시민운동가로 살았다. 작은도서관운동 대표, 미군기지 우리땅 되찾기 운동 대표 등 여성운동부터 환경운동까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온갖 일에 열의를 쏟으며 잰걸음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예순을 코앞에 둔 나이가 돼서야, 가슴속 문학을 향한 열망에 눈이 갔다.
“시민운동을 하며 많이 지쳤어요. 그러다 문득 문학만큼 내 안에 있는 질문에 답해주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쩌면 쓰는 일이 나를 살게 할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오랜만에 소설을 다시 쓰는데 너무 행복하더라고요.”(순금)
무엇보다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곁에 있었다. 남편이자 선배 소설가로서, 하씨는 남궁씨가 소설을 쓰는 내내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남궁씨는 “며칠 전에 남편이, 당신이 데뷔하고 나니 내가 마음이 참 편하다고 하더라”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하씨가 이어 설명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작가의 아내로만 30년을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니까요. 아내 안에 소설에 대한 열망이 늘 있다는 걸 알았죠. 함께 술 한잔 할 때면 쓰고 싶은 것들에 대해 늘 이야기했거든요. 그래서 계속 쓰라고 했어요. 아내가 당선되고 나니 드디어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창수)
남편은 전업 작가고 아내는 시민운동가였으니 살림이 넉넉했던 적은 없다. 그래도 둘 다 그저 돈이 없을 뿐이지 가난하다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쩌면 소설가 남편과 그 아내로서는 천생연분이다. 하씨가 2년간 아무 글도 쓰지 못하고 아무 벌이도 못 해 자녀 교육보험과 연금을 깨야 했을 때도, 아내는 군말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남편은 빠듯한 살림에 돈을 모아 아내의 오랜 꿈이었던 인도 여행을 보내줬다. 아내는 남편의 환갑 기념 해외여행을 선물하고 싶어 폴란드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대신 신청했다. 그마저도 “당신을 빼놓고 혼자는 절대 안 가겠다”길래 2019년 부부가 함께 3개월간 폴란드 여행을 했다. 지금도 각자 방에서 글을 쓸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함께 밥 먹고, 산책하고, 요가 하고, 영화 보는 일상이다. 부부는 “30년 째 연애하는 것처럼 산다”고 말했다.
아내가 소설가가 돼서 달라진 점이 있냐 물으니, 하씨가 “설거지할 때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답했다. “예전에 설거지를 하면 아내의 일을 도와준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소설가 남편으로서 설거지는 당연히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하씨는 "출발은 늦었지만 기회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아내는 정말 좋은 작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한 작가와 아내가 사는 집이 아니라, 이제 두 작가가 함께 사는 집”에서 부부는 각자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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