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원, 감정서 작성 과정서 소수의견 배제"
경실련, 위원 3명 업무방해 혐의 경찰 고발
A씨는 몸에 이상을 느껴 2017년 6월 지방 소재 B대학병원을 찾았다가 '담관염' 진단을 받고 한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퇴원한 지 한 달여 만에 가슴통증을 동반한 복통을 겪어 B병원을 찾았더니 '급성 담낭염'이란 진단이 나왔고,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A씨 가족들은 B병원의 의료 과실을 의심해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했다. 담낭(쓸개)과 담관(담낭과 십이지장을 잇는 쓸개즙 통로) 모두에 염증이 생긴 것 같다는 초기 진단을 받았는데 담관염에 대해서만 치료를 하고 담낭염을 방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의료중재원 감정위원들은 B병원이 A씨 초기 내원 때 담낭염을 의심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감정 소견을 냈다. 병원의 진단과 조치가 미흡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최종 감정서엔 이런 내용이 빠졌다. A씨 측 요구로 진행된 재감정에서도 위원들은 비슷한 지적을 했지만, 감정서에는 '(내원 당시) 담낭염 의심 가능성이 낮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감정서 작성은 해당 감정부에서 위원장을 맡는 상임감정위원의 권한이다.
의료중재원 상임감정위원 3명 고발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8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중재원 감정서에 병원 측 과실 의견을 누락하거나 내용을 조작한 혐의(업무방해)로 상임감정위원 3명을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2명은 A씨 사건에, 1명은 다른 사건에 각각 연루됐다.
경실련에 따르면 의료중재원 감정부는 상임위원 1명과 비상임위원 4명으로 구성된다. 상임위원은 의사만 맡을 수 있고 위원장 역할을 수행한다. 사건마다 위원 5인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는 걸 원칙으로 하되, 분쟁조정의료법에 따라 소수의견이 있다면 감정서에 이를 기재해야 한다. 감정서는 조정부로 전달돼 의료분쟁 당사자간 합의를 도출하고 피해를 구제하는 핵심 근거자료가 된다.
경실련은 고발 대상이 된 상임감정위원들이 감정서 작성 과정에서 소수의견을 기재하지 않거나 자신과 다른 의견을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이런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지만 최종 감정서가 비상임위원에게조차 공개되지 않다 보니 외부에 알려질 가능성이 드물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상임감정위원의 전횡은 척추고정술을 받다가 뇌손상에 빠진 환자 사건에서도 일어났다. 비상임위원들은 해당 병원이 협진 및 위험성 평가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지만, 정작 감정서에는 협진과 위험성 평가가 있었다고 기재된 것이다. 고발 대상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수술 과정에 병원 과실이 있었다는 다른 위원의 의견을 묵살한 채 최종 감정서를 만든 상임위원도 있었다.
"의료중재원 감정, 감독 없이 이뤄져"
상임감정위원의 전횡이 의료중재원 내 고질적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비상임감정위원을 지낸 송기민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은 "소수의견을 반영해 달라고 몇 차례 얘기해도 상임위원이 안 받아주기도 하고, 진실 규명을 주장한 위원을 다른 위원으로 교체해 (감정 결과를) 통과시킨 경우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개인적 일탈보다는 폐쇄적이고 불공정한 감정 제도에서 빚어진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남은경 정책국장은 "감정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를 포함해) 아무도 감독하지 않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의료중재원은 이날 "기자회견 사실을 접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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