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개봉 영화 '어나더 라운드'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중년 남성 교사 마틴(마스 미켈센)은 무기력하다. 학교에서는 강의가 재미 없어 대입 진학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학생들에게 항의를 받는다. 집에서는 가족들과 외출은커녕 제대로 대화를 나눈 지도 오래다. 한때는 전도유망했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던 마틴이다. 인생의 터널을 마냥 걷는 듯했던 그는 어느 날 삶의 새 계기를 마련한다. 동료 교사들과 저녁을 함께 먹다가 술에 관한 희한한 가설을 들은 뒤부터다.
혈중알코올농도 0.05%의 비의
동료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가 어느 학자의 주장을 인용해 전한 가설은 이렇다.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 마틴과 동료들은 오랜 만에 얼큰하게 술에 취해 흥겨운 시간을 보낸 후 특이한 실험에 나선다. 가설을 자신들의 일상 생활에서 검증해보자는 것. 평일엔 오후 8시까지만 술을 마시고 주말에는 금주했던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전례를 그들만의 음주 기준으로 삼으면서 말이다.
마틴과 동료들은 가방 안에 술과 음주측정기를 숨기고 출근한다. 짬을 내 화장실 등에서 술을 마시며 혈중알코올농도를 0.05%로 유지한다. 마틴은 이전엔 시도하지 못했던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과 마주한다. 술기운에 힘입어 거리낌 없어진 그는 열정적으로 강의하며 학생들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낸다. 활력을 되찾으며 아내와 두 아들과의 사이가 개선되기도 한다. 동료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취기 덕에 일을 즐길 수 있게 되며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다.
흥겹게 취했다 마주한 현실
마틴과 동료들은 ‘0.05%의 위력’을 실감한 후 좀 더 대담한 도전에 나선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니 각자 술을 최대치로 마셔 가장 이상적인 혈중알코올농도를 찾기로 한다. 마틴 등의 알코올 의존은 심해지고, 몇몇은 고주망태가 되어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다. 학교에서 몸을 잘 가누지 못해 문과 부딪혀 코피를 흘리기도 하고, 비척거리며 횡설수설하기도 한다.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마틴과 동료들은 일자리도 가정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실험을 멈출 때가 된다. 적당한 음주는 삶의 윤활유가 될 수 있으나 지나친 음주는 삶에 독약이 될 수 있다는, 자명한 교훈은 현실이 된다.
나이가 들어도 삶은 성장하는 것
영화는 음주의 명암 이상을 묘사하려 한다. 무료하고 소외된 삶을 살게 된 중년들이 폭음을 발판 삼아 생기를 되찾는 모습을 통해 인생의 보편적 특질을 포착한다. 마틴 등의 음주 여정은 유년기나 청소년기, 청년기의 질풍노도를 닮았다. 그들은 술로써 삶에 새롭게 도전하며 생을 즐기고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가 좌절하며 종국엔 정신적 성장을 이룬다.
영화의 덴마크어 제목은 ‘Druk’이다. 폭음 또는 통음이란 뜻이다. 영어로는 ‘Binge Drinking’인데, 정작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Another Round’다. ‘한잔 더’로 해석될 수 있는데, 삶의 또 다른 단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는 마틴 동료의 장례식과 학교 졸업식을 포개며 막바지로 향한다. 마틴은 이 대목에서 샴페인을 들이켜며 우아하게 춤을 춘다. 즐거움과 시련을 겪으며 인생의 또 다른 경지에 다다른 이의 환희와 체념이 느껴진다.
영화는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다. ‘셀레브레이션’(1998)과 ‘더 헌트’(2012) 등으로 유명한 토마스 빈테베르 감독이 연출했다. 수입사 엣나인필름에 따르면 빈테베르 감독은 “이번 작품은 인생을 편하게(안락하게) 살아가는 젊은이와 필사적으로 발버둥쳐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늙어가는 중년의 묘사를 통해 ‘인생’이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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