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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어떻게 부패 없는 나라가 됐을까?

입력
2022.01.18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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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친·인척 비리
부패 없는 나라 시사점 북유럽 국가들
스웨덴, 제도와 문화로 부패 근절 노력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화요일 연재합니다.


이재명(왼쪽 사진), 윤석열 대선후보.

이재명(왼쪽 사진), 윤석열 대선후보.

<32> 부패 없는 국가를 만들어간 스웨덴의 비결

대통령 선거가 5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신문지면상 대부분의 기사들은 후보자들에 대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번 선거 관련 뉴스들은 후보자의 공약보다는 후보자와 관련된 송사라든가 후보자의 도덕성에 대한 이슈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사실 과거를 돌아봐도,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본인과 친·인척비리로부터 자유로운 적은 없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우리나라 정치와 선거가 과연 이런 도덕성 문제로부터 언제쯤 돼야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또 부정부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환경이 구축돼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이런 생각과 질문들에 대해 유용한 시사점을 전달해 주는 국가가 있다면, 북유럽 국가들일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은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매년 발표하는 전 세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CPI) 순위에서 지속적인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나라들이다.

북유럽 지도

북유럽 지도


전쟁 패배 후 부패 없는 국가로 재탄생한 스웨덴

하지만 이들 나라들 역시 원래부터 부패 없는 국가들은 아니었다. 한때 부패 수준이 상당히 높은 국가였으나, 전쟁, 경제적 궁핍 등 국가가 직면한 역사적 위기 상황 속에서 투명성을 강화하고 부패를 근절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스웨덴의 경우 구스타브 3세(Gustavus Ⅲ) 시대인 1789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다. 이로 인해 스웨덴은 당시 스웨덴의 영토였던 핀란드를 잃게 되면서 커다란 위기를 맞는다. 또한 당시에는 스웨덴 공직자의 불법행위도 극에 달했다고 한다.

결국 스웨덴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왕인 구스타브 4세 아돌프(Gustav Ⅳ Adolf)를 폐위시키고, 신헌법을 제정하면서 근대 입헌군주제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오늘날 스웨덴이 현재와 같은 투명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변혁의 시기는 1820년에서 1850년 사이에 이루어진 일련의 변화들이 가장 큰 계기가 된 셈이다.

물론 이러한 군사 쿠데타와 특정 시점의 경제적 위기만으로 부패가 척결된 것은 아니다. 스웨덴 역시 그 이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부패 척결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지속되어 왔다.

스웨덴은 1766년 전 세계 최초로 정보공개 관련 법률인 출판언론자유법(Freedom of Press Act)을 성문화했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들은 이전부터 민주화된 국가를 지향하고자 하는 국가적 에너지가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러한 성찰은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발현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의 혼란을 틈타 다양한 비리가 유발될 것을 우려해 국가 차원에서 선도적으로 공공공개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을 제정한다. 공공공개법은 쉽게 말해 정부의 거의 모든 것을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오늘날 전 세계에 정부의 정보제공 청구권의 효시가 되었던 법률이라 할 것이다.

스웨덴 국민들은 오랜 성찰 끝에 부패 없는 나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빅뱅(Big Bang) 수준의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하고 공직사회의 부패나 비리에 대한 엄격한 처벌을 적용하는 무관용(zero tolerance) 원칙으로 오랜 관습과 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일례로 전 스웨덴 부총리 모나살린이 조카에게 줄 생필품을 공공카드로 구입한 사실이 밝혀져 여론의 강한 질타를 받고 부총리직에서 낙마할 만큼 부패에 대면한 국민들의 확고한 인식이 나타난다. 당시 스웨덴 부총리 모나살린이 조카에게 줄 생필품은 기저귀와 초콜릿 등이며, 금액으로는 약 34만 원 수준이었다고 한다.

브라트 스톡홀름 본부 직원들이 피카타임을 겸해 통상 주 1회 갖는 업무 회의를 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 사진

브라트 스톡홀름 본부 직원들이 피카타임을 겸해 통상 주 1회 갖는 업무 회의를 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 사진


'피카'에 녹아 있는 제도 수용성

부패 척결은 단순히 법 제도적인 차원의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고 해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해 부패는 관련 법규가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달성할 수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종의 문화 내지 관행으로 오랫동안 스웨덴 국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습관을 한번에 없애기 위해서는 상당히 과감한 수준의 제도 개혁이 필요하며, 이러한 제도개혁을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수용성도 함께 요구된다.

이러한 제도적 수용성 차원에서도 스웨덴은 상당히 준비되어 있는 상태였다. 스웨덴에는 ‘피카(fika) 문화’가 있다. 피카란 커피 한 잔에 빵이나 과자를 곁들여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말한다. 피카는 커피를 뜻하는 오래된 스웨덴어 ‘카페(kaff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스웨덴인들이 일상 속에서 가장 즐겨 하는 표현이 “스카 비 피카(Ska vi fika)?”일 것이다.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우리 차 한잔 하실래요?” 정도의 의미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하루에 두 번은 꼭 이 말을 한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누구나 피카를 갖자고 청할 수도 있다. 이는 직장 등의 조직 내에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차와 빵을 같이 나누며 조직 내·외부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담론을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해 주었다. 피카는 모든 직원이 함께하는 어울림의 문화다. 친한 직원들 간 끼리끼리 문화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는 "우리"의 개념이다.

상사와 직원, 동료와 동료들은 업무나 사적인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그것도 엄격한 격식 아래 전개되는 회의가 아니라 지극히 자유로운 티 타임의 형식 속에서 나누는 대화들이기 때문에 너무 과격해지거나 곧바로 결론을 낼 필요도 없다. 따라서 대화가 상호 간의 갈등으로 번지는 일들을 최대한 막아주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상시 전개되는 피카 문화는, 국가 내지 조직 차원의 중요한 어젠다가 생겼을 때만 회의가 전개되는 상황과 달리, 상시 여러 사람들과 담론을 나눌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주요 구성원들 간의 화법을 사전에 상당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라는 표현이 저는 관심이 없는데요라는 의미의 표현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람은 “저도 그 의견이 좋네요”라는 표현을 정말 그 의견이 마음에 들어서 한 말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차원에서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실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러한 개개인의 화법을 파악하지 못해 오해가 발생하고 그것으로 인해 문제가 오히려 불거지는 경우를 종종 접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로 스웨덴은 피카 문화를 통해서 상대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훈련과 나의 의견을 상대에게 오해 없이 전달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 할 것이다.


중용의 미 추구하는 '라곰'

피카 문화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이 ‘라곰(lagom)’ 문화이다. 라곰을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합리적 중도 혹은 중용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스웨덴의 문화적 특성이며, 이는 스웨덴 사람들에게 중요한 실천 덕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라곰 문화가 스웨덴을 대표하는 문화가 된 기원은 의외의 곳으로부터다. 바이킹 시절, 바이킹들은 뿔 모양의 전통적인 술잔을 이용했다. 그들이 함께 술을 마실 때 규칙이 하나 있다. 커다란 뿔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은 전사들이 그 뿔 술잔의 술을 한 모금씩 나눠 마신다.

처음 사람부터 맨 마지막 사람까지 뿔 술잔이 돌아야 한다. 중간에 누군가가 많이 마시면 맨 마지막 사람이 마실 술이 남지 않는 경우도 있고, 중간 사람들이 술을 아껴 마시면 맨 마지막 사람이 혼자 많은 술을 마셔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맨 처음 사람부터 중간 사람들은 적당한, 그리고 알맞은 양의 술을 마셔야 한다. 바이킹들은 언제나 둘러앉은 모든 사람들이 알맞게, 적당히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즉 적당히 수준을 지향하는 라곰 문화의 저변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라곰 문화는 오늘날에도 스웨덴 여기저기서 확인된다. 스웨덴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하지 않는다. 더 출세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업무에 몰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는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던 사람이 임신을 하게 되면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자 자발적으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다. 정규직을 유지한 채 아이를 키우게 되면, 근무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지 않느냐는 마음일 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피카 문화와 라곰 문화는 스웨덴식 합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이 스웨덴 내의 평가이다. 과감한 제도를 도입하거나 큰 폭의 개혁이 이루어질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저항이 발생한다. 하지만 피카와 라곰 문화는 이러한 저항을 최소화하고 특정 제도가 사회적으로 안착하는 데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숙의(deliberation)를 통한 쌍방 간 합의를 존중하기 때문에 제도개혁에 있어서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아울러 새로운 제도의 집행과정에서도 마찰이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또 한 번의 국가적 리더십을 선택해야 할 순간에 놓여 있다. 이 과정에서 특정 후보자의 자질과 잘잘못을 구분하기 위한 날카로운 시선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좋은 리더들이 많이 배출되지 못하는 우리 내부의 문화적 기질은 없었는지도 돌아볼 일이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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