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송수초 5학년 2반 담임 옥효진씨
모든 학생에 직업 주고, 세금 걷는 경제 활동 체험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월급 가장 높은 급식 도우미
선생님 책상 앞자리 월세... 부동산 거래도
'세금 내는 아이들' 유튜브 채널 운영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경제·금융 지식 체득했으면"
부산 송수초 5학년 2반의 오준호군은 코로나19로 일을 잃었다. 방역 담당을 맡았는데, 교실에 자동 손 소독기와 비접촉 발열 체크 자동화 기기가 들어와 실직했다. 오군은 비접촉 방역기기를 "이상하고" "나쁜 기계"라고 표현했다. 학급에서 방역 활동으로 월급을 받았는데, 자동화 기계가 그 돈줄을 갑자기 끊어놨기 때문이다. 오군은 당장 세금이 걱정이다. 이런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 온 유튜브 채널 '세금 내는 아이들'엔 학생들의 러다이트(반기계) 운동을 부추기는 어른들의 댓글이 달렸다.
실직과 세금을 고민하고, 기술의 발달로 해고를 몸소 경험한 초등학생이라니. 오 군을 포함한 이 학급 학생 30명은 모두 '직업'이 있다. 그렇게 반 친구들을 위해 일해 번 돈으로 세금도 내고 저축, 투자도 한다. 이런 학급을 만든 주인공은 담임 옥효진(32)씨. "제가 스물다섯 살 될 때까지 정기 예금과 적금의 차이도 몰랐어요. 저처럼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경제·금융 지식을 너무 모른 채 어른이 되면, 아이들도 힘들 것 같더라고요. 전 너무 힘들었거든요. 피할 수 있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요. 꼭 필요한 지식인데 초등학교 정규 학업 과정엔 없으니, 따로 그 체험 시스템을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했죠." 24일 전화로 만난 옥씨의 말이다.
옥씨가 이끄는 반은 작은 국가 같다. 학급에 나라 살림을 하는 정부, 법을 만드는 국회, 그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화폐도 있다. 단위는 미소다. 교실의 환기를 담당하는 아이는 기상청 직원으로, 교실 전등 관리하는 아이는 한국전력 직원으로 일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급식 도우미. 일하는 시간과 강도가 높지만, 월급이 360미소로 가장 많아 지원자가 몰린다고 한다. 일해서 번 만큼 소득세도 낸다. 그런 아이들의 입에선 "(월급) 실수령액" "수익률"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지난해 여름, 은행원 직원인 아이 책상 앞에 유난히 여러 아이가 줄을 서 있는 거예요. 물어봤더니 10주짜리 금융 예금 상품 가입 때문이었죠. 6월 중순이었는데 2학기 개학하는 9월 1일에 맞춰 만기 적금에 넣어두면 이자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저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놀라웠죠."
옥씨의 반 아이 중엔 임대료 수익자도 있다. 반에서 가장 비싼 자리는 옥씨 바로 앞에 있는 소위 1분단 맨 앞줄로, 시가는 600미소에 달한다. 담임 선생님 책상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 큰 화면에 가려져 '선생님 비조망권'이라 '명당'으로 꼽힌다. 옥씨는 "한 아이가 그 자리를 사 한 달에 40미소의 임대료를 받고 월세를 준 뒤 자신은 정작 다른 자리에 앉더라"며 웃었다. 아이들의 꿈은 청약에 당첨돼 선생님 비조망권 인근 자리에 한 달 동안 앉는 것이다.
옥씨는 2019년부터 이렇게 학급 운영을 했다. 초반엔 옥씨의 손을 많이 탔지만, 어느 정도 지나면 아이들이 스스로 반의 경제를 굴린다고 한다. 오군이 졸지에 실직자가 되자 아이들은 회의를 열어 실업급여제도를 만들었다. "올해는 다른 반과 교류도 해보려고요. 작은 나라를 세웠으니 실크로드도 열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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