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코리아가 새해 첫 새 차로 골프를 내놓았다.
골프는 장수 모델 비틀의 역할을 넘겨받아 1974년 데뷔한 이래 폭스바겐 브랜드의 간판 모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전동화 시대를 맞아 그 역할은 차차 순수 전기 모델인 ID.3과 ID.4에게 넘어가겠지만, 전성기에 비하면 판매량이 많이 줄기는 했어도 폭스바겐의 고향인 독일과 유럽에서 골프의 인기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골프는 꽤 잘 팔리는 차였다. 6세대와 7세대 모델은 티구안과 더불어 폭스바겐이 메이저 수입차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디젤게이트 여파로 국내 인증이 취소되며 판매를 중단한 지 약 5년 반 만에 8세대 모델이 다시 국내 소비자들을 찾았다.
골프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국내 시장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과연 예전 인기를 다시 누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실 일반적인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성향을 기준으로 보면, 과거 골프의 인기는 이례적이었다. 모터리제이션 초기였던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골프와 같은 해치백이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은 일은 아주 드물었기 때문이다.
골프의 인기에 주목해 몇몇 수입 브랜드가 해치백을 우리나라에 들여왔지만,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곳은 없었다. 그나마 국산 해치백 중에서 판매량이 많은 편이었던 현대 i30이 골프보다 덜 팔린 시기도 있었다. 그래서 골프는 차의 장르와 관계없이 골프여서 잘 팔렸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잘 관리된 폭스바겐의 브랜드 이미지와 절묘하게 정해진 가격이 있었다. 수입차 시장 성장기에 수입차에 입문하는 소비자들이 비교적 적은 위험부담을 안고 선택할 수 있는 브랜드와 모델이었던 셈이다.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일단 폭스바겐 코리아가 배포한 자료와 1월 첫째 주에 있었던 언론대상 시승 행사에서 잠깐 몰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차 자체의 특징과 경쟁력부터 살펴보자.
우선 골프의 전통적 장점은 8세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달리고, 돌고, 서는 기본기는 여전히 훌륭하다. 무난한 출력의 디젤 엔진을 얹어 경쾌함을 느끼기 어렵기는 해도, 운전자가 차를 다루면서 드는 만족감은 높은 수준이다. 나아가 운전자의 조작에 대한 반응은 이전보다 더 세련되게 다듬어졌고, 승차감은 한층 더 편안해졌다.
국내 시판 중인 다른 폭스바겐 모델들보다 더 신선한 느낌을 준다는 점도 소비자를 설득하기에 좋다. 투박하다 싶을 만큼 간결하고 기능에 충실했던 과거 골프들과 비교하면, 새 골프는 유행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한 느낌이 든다.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을 중심으로 한 대시보드 디자인, 포르쉐 차들을 연상케 하는 전자식 기어 선택 레버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곧잘 대중적 브랜드 수입차들의 약점이 되곤 하는 ADAS 시스템도 아쉽지 않게 갖췄다. 모든 인터페이스가 훌륭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차에 탄 사람들에게 최신 기술이 담긴 새 차를 타고 있는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평가는 장점과 단점을 고루 지닌 디젤 엔진부터 갈리기 시작한다. 머지 않아 가솔린 엔진을 얹은 고출력 GTI 모델이 추가될 예정이지만, 보편적 수요층을 끌어당길 주력 모델은 이번에 출시된 디젤 엔진 모델인 2.0 TDI다. 적당한 힘과 비교적 준수한 연비를 내는 엔진은 진동도 상당히 잘 억제되어 모는 사람 관점에서는 크게 불만스럽지는 않다.
회전수가 낮을 때와 급가속할 때 비교적 또렷하게 들리는 엔진 소음도 지나치다고 할 정도는 아니어서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다. 다만 디젤 엔진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력 모델의 동력계에 디젤 엔진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트윈도징이라는 이중 요소수 분사 기술로 배출가스 정화능력을 키웠다고는 하지만, 디젤 엔진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떨쳐버리기에는 디젤게이트의 굴레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차를 둘러싼 시장 환경에서도 골프에게 유리한 면과 불리한 면이 엇갈린다. 긍정적 측면은 이제 동급에서 골프와 어깨를 부딪칠 만한 경쟁 모델은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푸조 308을 빼면, 현재 수입차 가운데 제품군에 골프급 해치백을 남겨둔 곳이 대부분 프리미엄 브랜드다. 동급 모델은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와 BMW 1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유럽에서는 골프와 시장이 겹치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않다. 즉 해외에서의 경쟁 모델이 국내에서는 후광 모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A-클래스와 1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 기본값이 4,000만 원대다. 이들은 골프와 장비 수준은 큰 차이가 없으면서 값 차이는 제법 난다. 해치백 중에서도 엔트리급 모델을 고르는 입장이라면, 골프가 합리적 선택에 가깝다.
그러나 경쟁 모델이 많지 않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수요층 자체가 얇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은 국산차와 수입차를 가리지 않고 소형차의 시장 흐름이 소형 SUV로 완전히 바뀐 상황이다. 특히 기능과 스타일 모두 골프와 같은 중소형 해치백과 별 차이 없으면서 공간 활용도는 더 뛰어난 SUV들이 엔트리급 수입차 시장에 여럿 포진하고 있다.
이전에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던 시절과 비교해 폭스바겐의 제품 포트폴리오가 바뀌었다는 점도 골프의 입지를 좁힌다. 티구안이 2세대가 되며 덩치가 커진 덕분에 시장에서 겹치는 부분이 크게 줄었지만, 대신 지난해 국내 판매를 시작한 티록이 골프의 트렌디한 대안 자리를 꿰찼다. 심지어 티록은 골프와 가격대도 겹치는 영역이 있어, 구매를 생각할 때 두 차를 놓고 저울질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이렇듯 새 골프가 여러 측면에서 설득력을 갖춘 모델이기는 하지만, 과거 전성기의 인기를 다시 누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골프라는 차의 장점과 매력을 아는 소비자들이 있고 유행에 뒤지지 않는 장비와 기능들을 적당히 갖춘 만큼, 나름의 입지를 차지하고 스테디 셀러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은 있다. 동력계를 가솔린이나 하이브리드로 바꾸거나 선택할 수 있도록 추가하는 등의 노력을 더한다면, 새 골프의 입지는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글: 류청희 칼럼니스트
1996년 월간 <취미가> 필진을 시작으로 웹진/자동차 월간지 <비테스> 편집장, 웹진 <오토뉴스코리아 닷컴> 발행인, 월간 <자동차생활>, <모터매거진> 기자로 활동했으며 제이슨류쩜넷 운영 및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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