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반대신문 vs 피해자 보호 충돌… 조화 필요
"헌재 결정, 재판·수사 차이 간과…특수성 고려해야"
"화상증언·진술조력·사후지원 총동원 등 대책 필요"
법조계, 증거능력 인정 특례·북유럽 모델 접목 제안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큽니다. 얼마 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들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죠. 또 다른 청소년 피해자는 증인신문을 마치고 자해를 했습니다. 형사소송법 절차가 피해자들에게 어떤 추가적 고통을 남기는지 이해를 해야 합니다.”
(법원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녹화 진술 관련 실무상 대책' 종합토론 중)
지난달 헌법재판소가 내린 성폭력처벌법 30조 제6항 등의 위헌결정에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당 조항은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19세 미만이거나 신체·정신적 장애로 사물 변별 및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경우 피해자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에 대한 녹화물을 일정 조건하에서 재판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헌재가 "반대신문권 보장이 안 된다"는 등의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당장 현재 재판중인 미성년 대상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들은 법정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법조계에선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을 수 있는 2차 가해와 진실규명의 어려움을 헌재가 고려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원 내 연구회인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회장 오경미 대법관)' 역시 10일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녹화 진술 관련 실무상 대책’에 대한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한 비판과 미성년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 대책 등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법정 서야 하나…"방어권 남용시 형량 가중·미성년 진술 특수성 고려해야"
이날 토론회의 쟁점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과 피해자의 보호라는 두 가치 사이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였다. 토론자로 나선 김동현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부장판사)은 "반대신문권이 반드시 직접 신문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는 게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개선된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리 후 피고인의 방어권 남용이었음이 밝혀진다면 추가피해를 준 결과가 되므로 양형으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 증인신문 전 당사자들 사이에 공론화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제안했다.
오정희 서울고검 검사는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대안으로 제시했던 '증거보전 절차 강화'와 '비공개 심리' 등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오 검사는 “조기 증거보전절차를 실시해서 피해자를 반대신문에 노출하면 대질조사를 섣부르게 하는 것처럼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특히 미성년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와의 관계가 가까워서 이중적 감정이나 회유와 압박 등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친화적 조사방식 강구해야"…북유럽 모델·아동변호인제 도입 제언도
참석자들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얻는 과정에서 조사자와 판사, 신뢰관계인 모두 피해자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옥선 진술조력인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들은 다른 피해자들과 달리 자신이 잘못한 것 같다는 식의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진술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화상증언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재판에서 질문이 오면 답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제언했다.
오선희 변호사는 북유럽 모델을 접목해 판사와 검사, 피의자, 피해자 변호사가 피해자에게 친화적인 장소에 모여 질문을 정리한 뒤 전문 수사관에게 묻게 하고 이를 바깥에서 지켜보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유사한 방식의 해외 아동변호인제도(Children’s advocacy)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미성년 성폭력 수사에서부터 재판까지 피해자에 대한 보호의식이 미진하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임수희 수원지법 안산지원 부장판사는 "특히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이 14세 미만인 기준일 때의 (수사)시스템이 아직 바뀌지 않고 있다"며 "16세 미만으로 상향개정됐음에도 관련 형사법제가 바뀌지 않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